현관 엘리베이터 입구에서는 한 무리의 사원들이 모여 웅성대며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운전 기사가 밀어준 현관문을 통과한 형화와 최 상무는 곧 그들의 무리 속으로 끼어들었다.
모두들 고개를 들고 엘리베이터 표시판을 보고 있는 모습뿐이었다.
형화도 고개를 쳐들어보았다.
세련된 검은 빛이 도는 금속 철판 속에서 노란 글자가 7…6…5、하고 변하더니 한참을 정거한다.
-아이쿠 최 상무님、벌써 출근을 하십니까.
아랫배가 어지간히 부풀어나온 중년 신사가 반갑게 소리친다.
-아니、구 상무. 오랜만입니다 그려. 두 사람은 요란스럽게 악수를 하더니 출근자들의 무리 저쪽으로 손을 잡은 채 빠져나갔다.
-이거 뭐 세금 때문에 밤낮 없이 골치 아파 죽겠습니다.
-그 집도 세무 감시에 걸리신 모양이시군요.
-글쎄 말입니다…
-하여튼…
이제 두 사람의 말소리는 좀 더 멀어지고 있었다.
딩동 일 층에 내려와 멈춘 엘리베이터는 소리도 없이 문을 연다.
조그맣게 안정된 음악 소리가 그 속에서 흘러나왔다.
여섯 사람이 내리고 스물에 가까운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형화가 서둘러대는 사람들에 밀려 제일 나중으로 들어서려는데 이미 거기서 내린 여자 하나가 되돌아와 형화를 툭 건드리며 말을 건넨다.
-으음、미스 김.
-어쩌자고 늦었어. 지금 김 부장은 잔뜩 올라 있다구 언니 때문에.
-왜 또?
딩동.
이때 엘리베이터가 문을 닫으려고 신호를 울린다.
형화는 재빨리 단추를 눌렀다.
차문은 닫히다 말고 다시 열리는 것이다. 형화는 단추를 누른 채로 계속 밀었다.
-왜?
-글쎄 올라가보라구요.
-그러지 말구 ….
그러나 형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엘리베이터 안의 사내들이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다.
-이거 뭐야. 다음 차 타쇼. 거 몰지각한 행동 집어치웁시다.
제각기 한마디씩 하는 것이다.
형화는 아차 싶어서 단추에서 손을 떼고 껑충 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스르르 문이 닫히더니 엘리베이터는 또 노란 숫자를 차례로 나타내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형화는 늦어버린 사실이 전혀 자기와 관계되는 일이 아니라 한강 다리와 버스와 사고에 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무조건 죄의식에 억눌려버리고 말았다.
언젠가 한 번은 출근길에 회사 입구 좌측 다방 앞에서 칠 개월 만에 사촌오빠를 만나 반가와서 수선을 피우다가 십여 분을 지각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때 공교롭게도 김 부장이 현관문을 들어서다 흠낏 보고서는 사무실에서 십여 분을 기다린 것이다.
헐레벌떡 형화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김 부장이 능청맞게 왜 늦었느냐고 다그쳤고, 이때 형화는 순간적으로 숨을 더 헐떡거려 내쉬며, 차가 사고가 나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했노라고 둘러대었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자칫 형화가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듯 설명을 늘어놓는 바람에 김 부장은 통쾌하게 웃었고, 미스 조, 아침부터 다방 앞에서 남자와 소란 피운 일은 어쨌어라고 대꾸하여 만신창이 얼굴이 되어버린 적이 있었다.
(한강 다리에서 사고가 났다면 아마 나를 상습범이라고 할거야)
형화에겐 이것이 참 난처한 경우가 아닐 수 없는 일이다.
엘리베이터는 짐짝을 실어나르듯 이층 저층에다 사람 꾸러미들을 내려놓더니 십오 층에 가까워가고 있었다.
(이번엔 차라리 늦잠 잤다고 하자. 그게 더 나을꺼야)라고 결정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면 김 부장은 미스 조 어서 결혼이나 하지 그래 하면서 비웃음에 가득 찬 말을 던질 것이 분명하다.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정지하면서 십오 층에 멈춰섰다.
열려지는 문 사이로 김 부장이 분명한 구두와 바지락이 스쳐가는 모습이 보인다.
김 부장은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는 모양이다.
형화는 급히 걸어서 사무실에 들어갔다.
일반 사원들은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거나 양복 저고리를 벗어서 걸거나 하고 있었다.
형화는 또 하나의 조그만 비서실 문을 열었다.
아차!
책상은 토요일 오후에 널어놓은 대로 어수선하게 어지러진 채였다.
분명히 그날은 라디오의 음악도 크게 틀어놓은 채였는데 형화는 그제서야 자신이 오늘 큰 궁지에 몰리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정리하려고 손을 대기도 전에 김 부장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폭발 직전의 화산처럼 형화를 노려보면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 쿵 의자에 걸터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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