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암으로 오랜동안 병고에 시달리던 막달레나라는 본명을 가진 할머니가 있었다.
6ㆍ25 때 이북에서 혼자 월남、호박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온 그 할머니는 호박 할머니라는 별명을 가지고 억척 같이 돈을 모은 부자(?) 할머니였다.
혼자 사는 할머니로서는 건강이 필요할 뿐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었던 그 할머니는 오랜 병고를 치르면서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외로운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다.
소식을 전해 듣고 다른 수녀님 한 분과 호박 할머니를 찾았을 때는 이미 병은 깊을 대로 깊어 있었고 의사로부터는 사형선고를 받은 후였다.
방 안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는데 오랫동안 씻지 않은 몸과 얼굴은 말할 수 없이 더러워져 있었고 이부자리와 방바닥에서도 참을 수 없는 냄새가 진동했다.
같이 간 수녀님과 함께 우선 할머니의 더러운 얼굴 손발을 깨끗이 씻어드리고 방안을 대강 정리해드렸다.
이틀 후 다시 호박 할머니를 방문했을 때 방문 앞에는 여러 사람들이 둘러서 있었다.
할머니를 막 임종 중이었다. 급히 들어가서 임종을 시켜드리고 남자 교우들을 불러 할머니의 장례를 준비했다. 할머니의 요 밑에서는 꽤 많은 양의 돈이 나왔는데 그 할머니는 미처 돈의 이용도에 대한 유언을 못하시고 돌아가신 것이었다.
우리는 그 돈으로 장례비 일절을 쓰고도 남아 매월 호박 할머니를 위한 위령미사 예물로 사용키로 결정했다.
일가친척이라곤 한 명도 없었던 그 할머니는 자기가 억척 같이 번 돈을 쓸 줄 모르는 구두쇠 할머니였는데 나는 늦게서야 호박 할머니를 찾게 된 것을 무척이나 후회했다.
조금만 일찍 그 할머니를 알았더라면 그가 소중하게 모았던 돈을 좀 더 보람 있고 값있게 쓰실 수 있도록 이끌어드릴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후회감은 꽤 오랫동안 내 마음을 괴롭혔다.
남의 도움을 받을 줄도 도움을 줄 줄도 몰랐던 외로운 할머니는 평생을 그렇게 고독하게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났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끝도 한도 없는 일을 되풀이하자면 자연히 짜증스럽고 귀찮은 감정에 지배되곤 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통하지 않는 대화、무지스러운 고집、피곤한 몸과 마음은 간혹 내 전교생활을 지루하고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지독히도 가난한 환경 불우한 처지 속에서도 복음말씀을 믿고 생활에 옮기고자 노력하는 소수 평신자들의 꾸밈 없는 신심은『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입니다』(요한 5장 17절) 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과 함께 의욕과 희망을 내 마음 속 깊이 불어넣어 주곤 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내가 일하던 소도시 한 본당에서 주임신부로 계시던 어떤 외국인 사제의 청빈한 삶은 청빈을 생활의 한 방편으로 살아가야 하는 수도자인 내게 더할 수 없는 깊은 감명과 공감을 불러일으켜 준 귀한 경험이었다.
담배를 몹시 좋아하시던 그 신부님은 어느날 갑자기 담배를 끊으셨고 조금씩이나마 드시던 아침식사도 끊어버리셨다.
당황한 식당 아줌마는 아침식사를 안 드시는 신부님 때문에 혼자서 속을 태웠지만 그 이유는 오랜 시일이 지나서야 밝혀졌다.
그 신부님은 어느 가난한 학생의 학비를 도와주고 계셨던 것이었다.
쓰고 남은 여분으로 도와주신 것이 아니고 좋아하는 담배 식사를 끊는 극기와 희생을 통해 이웃을 도왔던 그분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 기쁨으로 남아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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