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 3백만 명이 거주하는 일본 동경교외「기시바」에는 50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기시바」구역은 동경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의 하나로 고작 목조 가옥들과 작은 공장이 있는 곳이다.
그「기시바」에 양로원이 하나 있었는데 의술은 매우 수준이 높았다.
이 양로원의 환자들의 대부분은 수 년 내지 십 수년째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들이었고 게중 일부는 가톨릭신자들이었다.
나는 한판에 두 번씩 거의 하루 종일 걸려 그곳에 가서 봉사를 하곤 했는데 이튿날 아침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밤 새벽 2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야간 당직 간호원으로부터 8병동으로 급히 와달라는 전갈이었다.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죽어가는 환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성유(聖油)를 준비한 다음 양로원으로 달려갔다.
간호원이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나를 안으로 인도했다.
간호원들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내가 전에 자주 찾아봤던 나이 많은 천주교신자 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간호원의 대답은 달랐다.
당신을 필요로 하는 환자는『나이드신 신자가 아니라 다른 할머니다』
순간 나의 머리속에는『8병동에는 그 신자 외에는 없는데…』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간호원은 나를 어느 할머니가 누워있는 침대로 끌고 갔다. 그 할머니는 언제나 내가 방문했을 때마다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던 그 할머니였다.
내가 보기엔 그녀가 이제 곧 숨을 거둘 것 같다는 짐작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똑똑하게 천천히 말을 할 수가 있었다.
그녀는 내가 신부라는 것과 나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18년간 병상에 누워있을 동안 죽음을 앞둘 때는 가톨릭신부에게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왔었다는 것 등을 천천히 그러나 똑똑히 이야기했다.
나는 기록판에 그녀의 이름과 나이를 적었다.
그녀의 나이는 98세였다.
나는 그녀가 어디에서 가톨릭신부에 대해 알았는가 하고 물었다.
그녀는 한참동안씩 중간 중간 숨을 쉬었다가는 천천히 그녀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소녀였던 시절에 가톨릭계(系)학교에 다녔다.
거기서 그녀는 3년간 한 수녀와 알고 지냈다.
17살 때 그녀는 신자가 됐다.
그녀는『나는 그때 영세를 하고 영성체도 모셨어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녀가 선택권 없는 결혼을 하고났을 때 당시 관습으로는 일반적으로 시가 집안의 결정에 따르도록 돼 있었기 때문에 절을 소유한 스님인 남편을 따라 산속에 있는 절(寺)로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녀는 산속에서 수많은 무덤을 관리하고 향불을 피우는 일을 해야 했다.
그녀는 성당에 가고 싶었고 남편도 성당에 가도록 말로는 허락을 했지만 도대체 깊은 산속에선 그 어느 곳에도 성당이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다 그럭저럭 8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러고는 결국 70년을 그곳에서 살아버린 것이다.
그사이 남편도 나이가 들어 죽었고 숙명인지아이들도 모두 병이나, 사고로 죽었다.
그리고 절에도 새로 다른 주지가 와 그녀는 절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그래서 10년 전 그녀가 온 곳이 바로 이 양로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지난 80여 년간 항상 하느님을 생각하며 지냈는지 여부를 물었다.
그녀는 그녀의 오른쪽 손을 가까스로 펴 보였다.
그녀는 묵주를 쥐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가 모기소리 만하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80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를 했었어요. 매일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불상 옆에서도, 화장하는 불꽃 옆에서도 항상 손이나, 주머니 속에 묵주를 갖고 기도했어요. 내가 죽기 전에 한번만 신부님을 만나서 나를 꼭 천국으로 보내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천국에서는 자식들과 헤어지지 않도록 해달라는 마지막 기도를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목숨이다 했다고 생각하고 병자성사를 준비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