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의 가장 기초적인 사목 활동의 중심은 본당이다. 바로 이 본당에서도 본당 신부님의 역할이 지대하게 큰 만큼 모든 신자들의 영성생활은 신부님들의 지도 여하에 따라서 상당히 보수적일 수도 있고 진보적일 수도 있다.
내가 새로 부임하신 P 신부님과 일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점에서 내 신앙생활의 내면에 있어서 많은 변화와 또 다른 면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신학적인 사조로 표현한다면 지금까지 내 생활의 전부인 것은 신의 권능이었다. 다시 말하면 중세 철학의 신의 만능 시대에서 교회의 엄격한 권위하에 수덕과 극기의 생활만 한 애기 수도승과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갑자기 인문주의 사조가 물밀듯이 교회 안으로 침투해 오자 그 사고방식은 하나의 낡은 사상으로 처리해 버리고 새롭고 발랄한 가능적인 신앙의 세계를 향하여 폐쇄되었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보려고 발버둥치던 때였다. 그러니 자연히 모든 것에 비판적이고 눈은 예리한 칼날과 같았다. 신앙생활에 대한 새로운 인격 형성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까?
내가「성금요일 오후」를 집필한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내 개인적인 신앙생활 내면의 고백일 뿐 아니라 우리 전체 교회가 제2차「바티깐」공의회 후에 당했던 새로운 거센 신앙의 물결이었다.
또한 거기에다가 우리 본당이 다른 본당보다 더 많은 풍파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우리 본당이 수도원 소속에서 교구 소속 본당으로 넘어가 버렸다. 또한 그 여파가 말할 수 없이 컸던 것이다. 당장 눈 앞에 닥치는 것이 본당의 자치 운영이었다. 교회 본당 회장 이하 모든 간부들은 매일처럼 모여서 서로 의논하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P 신부님께서 본당의 임시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당시 P 신부님은 가톨릭시보사 주간으로 계시면서 임시로 모든 것을 수습하기 위해서 우리 본당의 사목도 맡아보셨다. 신부님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고물 찝차를 손수 운전하시면서 본당에서 가톨릭시보사까지 출퇴근하셨다. 고물 찝차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우리 촌사람들은 그전까지는 별로 찝차를 타본 적이 없었다. 해서 아무리 왕고물 찝차이지만 가끔 그것을 타보는 멋이란 옛날 사람이 말을 한 필 구해서 타는 것 이상으로 기분이 좋았다. 그것도 본당 신부님이 친히 운전석에 앉아 계시니 말이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아침미사를 일찍 마친 신부님은 식사를 하시기가 바쁘게 시보사로 출근하려고 서둘러서 차고로 가셨다.
그러나 밤 사이에 날씨가 매우 추웠던 탓으로 발동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미사 참례했던 뚱뚱한 서마지아 본당 회장님이랑 깡마른 몸매의 윤요한 총무님이랑 모든 교우들이 달라붙어서 차를 움직이려고 눈이 쌓였던 빙판길을 오르락 내리락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수고하였다. 그러나 고물 찝차는 여전히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신부님은 출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연방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셨다. 그러나 얼굴 표정은 느긋하게 보였다. 그래서 우리들이 너무나 배가 고프고 화가 나서『신부님 당장에 이 왕고물 찝차를 버리십시요』하고 대들었다.
그러자 신부님은『아닙니다. 그래도 내가 구라파의 유학 시절엔 십 년 동안 이런 고물 찝차를 주워서 운전하고 다녔는데』하시며 씩 웃으시는 것이 아닌가?
『아이구 신부님도』
『예, 조금만 더 참으십시요. 곧 시동이 걸릴 것입니다』 하시고는 다시 찝차의 뚜껑을 열어 젖히고 휘발유의 고무 호스를 손수 입으로 빨아내는 것이다. 정말 그만큼 그분의 성품은 너그럽고 서민적이었다. 항상 인간미가 출출 흘러 넘치는 텁수룩한 불란서형 신사였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조급 있으니까 가톨릭시보사에서 별똥 같은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신부님, 어떻게 되셨습니까? 지금 출발하시겠습니까?』하고 전화하는 편집장의 목소리는 사뭇 초조해 보였다.
『아닙니다. 차가 고장이 났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그러나 신부님의 음성은 여전히 느긋하시고 웃음으로 수화기를 끊었다.
알고 보니 그날이 신문이 발간되는 날이라 신부님께서 마지막 원고를 점검하셔야만 그날 오후에 신문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문사의 일이 오죽이나 다급했을까? 겨우 고물 찝차의 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은 오정이 훨씬 넘어서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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