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宗敎)와 문화(文化)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음은 새삼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체로 종교의 진보는 바로 문화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역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든 최고(最古)의 문화는 종교적 성질의 것이었고 우리나라도 그 예외는 될 수 없었다.
가톨릭은 모든 문화가 결국 피안적, 즉 천주를 향하여야 하고 또한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가능하게 보고 있다.
따라서 문화는 인간 중심이요 피안적이 될 수 있고 이러한 문화가 이미 인류나 개인에게 종교적 이익을 갈라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이조 후기 사회에 뒤늦게나마 근대화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였다. 그들을 우리는 보통 실학자(實學者)들이라 부르고 있는데 서양의 문물과 접촉함에 있어 이러한 선진문화를 직접 수입하여 현실 사회를 개혁하려는 것이었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개화운동이 시작되고 그것은 조선이 근대사회요 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귀중한 제1보였다.
이제 서양 문물과 함께 들어온 천주학이 민족의 숙원인 이 근대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으며 어떻게 기여했는가 하는 것을 고찰(考察)해 보고자 한다. 천주교는 우선 근대화를 노골적으로 막는 유교(儒敎)와 싸워야 했고 다음은 소위 근대화를 내세운 동학(東學)과도 싸워야 했다.
근대화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은 서구화를 의미했던 것 같다. 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인간의 복지 사회를 건설하는 데 그 최종 목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운명적인 또 하나의 목표 즉 근대화를 저지하는 외세의 침략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반침략주의는 근대화 과정에서 주요한 목표가 안 될 수 없었음을 미리 염두에 두기 바란다.
그리고 인간의 복지 사회란 반드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런데 복지냐 자유냐는 진보관에 따라 다르고 공산주의자는 물론 복지이고 근대 국가들도 원칙적으로는 자유를 내세우지만 실지에 있어서는 복지를 선행시키고 있는 국가와 민족이 적지 않다. 물론 가톨릭에서는 복지가 자유를 막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좀 서론이 길어진 감이 있지만 이것은 앞으로 다룰 주제가 의미하는 것이며 또 주제의 내용과 방향을 우선 내 나름대로 미리 설명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
가톨릭이 한국에 수용될 때 직접 서양으로부터 된 것이 아니라 중국을 거쳐서 왔다. 일단 중국화된 가톨릭이,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단 한자화된 서학 서적이 우리나라에 소개됨으로써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래하게 된 것이다. 일단 중국화된 천주교는 이마두와 그의 대표적인 저술인「天主實義」에서 대표된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는 천주실의의 기본 노선을「영유척불」로 표현하지만 여기서 잘 분간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즉 마테오ㆍ리치는 완전히 유교주의와 영합한 것은 아니며 처음으로 주자와 공자를 이질적인 것으로 분별한 것이다. 공자의 고전유교정신은 그리스도교와 일치하지만 주자학적인 이론은 그리스도교와 일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청조의 새로운 학풍을 우리는 청조의 고증학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곧 서양의 과학 정신을 가리킨다.
이 새로운 정신이 이미 청조에서는 주자에게 비판을 가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이조 후기에 와서 성리학(性理學) 자체 내에서 현실을 외면하고 공리론에 그친 성리학을 비판하는 학자들이 일어났는데 이것을 우리는 보통 실학파로 부른다. 서학서가 도입됨에 있어 서학서가 우선 이러한 실학파들에게 환영된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청조에서 현실 문제에 해답을 얻기 위하여 관념론을 극복하는 데 서학이 적지 않게 이바지하였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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