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간난 아가다는 1813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아가다의 동생 엘리사벳은 언니가 열여덟 살 적에 시집 갔는데 부모가 외인이었던 관계로 외인한테 출가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시집 간 지 불과 2년 만에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왔다.
이 무렵 천주교인이던 외할머니가 손녀에게 대신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게 하였다. 아가다는 이 말에 놀라 비로소 천주교를 알아보려 하였으나 아는 교우란 전혀 없어서 모친에게 교우를 소개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다행히 모친 친척 가운데 한바울란다 교우가 있어서 아가다는 그 집을 찾아가 교리를 열심히 배우고 개종하였다. 영세 준비를 하고 유 신부에게 영세하였다. 곧 모친과 오라버니도 입교하였다.
성품이 곧고 근면하였으므로 교우의 본분도 충실히 이행하였다.
종교 서적을 부지런히 보는 한편 희생과 극기를 많이 하였으며 특히 대재를 자주 지켰다.
남들이 재혼을 권했으나 이미 절제생활을 결심하고 청혼을 거절하였다.
아가다의 언행이 매우 정결하고 단정해서 교우들은『아가다는 얼음처럼 맑고 설화석고처럼 희다』고 경탄해마지 않았다.
집 사람들이 수계한다는 소식에 크게 화가 난 부친이 그들이 수계하지 못하게 전력을 다해 방해하기 시작하였으나 그럴수록 그들은 더욱 열심히 믿었다. 그래서 부친은 아내와 아들을 멀리 경상도로 쫓아내는 동시에 딸 아가다도 이미 죽은 남편 집으로 돌려보냈다.
시집으로 돌아온 후로 아가다는 시누이들을 설득하여 마침내 그들을 입교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시집에서도 자유롭게 수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길쌈으로 돈을 푼푼이 모아 결국 서울 잣골에 집 한 채를 사고 따로 살게 되었다. 그리고 교우 집으로 전전하고 있던 우수산나를 오게 하여 친형제처럼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지냈다.
우술임 수산나는 양주의 양반의 교인의 딸로 태어났다. 인천 어떤 교우에게 출가하였을 때 남편의 권고로 입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남편을 여의고는 서울로 올라와 여러 교우 집으로 다니며 하인 노릇을 하다가 이아가다의 초청을 받게 되었다. 두 과부는 함께 벌이를 해가며 열심 수계하였으며 우수산나도 묵상을 부지런히 하고 자주 대재를 지켰다.
1846년 봄 김 신부가 잡히게 되자 현 회장은 김 신부 집에 남아 있었던 여교우들을 새 집으로 옮기는 도중 일단 이아가다 집에 피신시켰다. 이아가다도 새 집으로 가 있었고 우수산나만이 혼자 집에 남아 있을 때 포졸들이 여교우들이 피신할 때 가마를 메고 갔던 교꾼들을 앞세우고 곧장 이아가다 집을 습격하고 새 집을 대라고 협박하는 바람에 수산나는 놀라고 겁이 나서 결국 포졸들을 현갸오로 집으로 인도했다. 이리하여 현 회장 이아가다 우수산나 등 6명이 모두 붙잡혀 좌포도청에 갇혔다.
한때 옥 중에서는 우수산나가 현 회장 집을 가리켜 줌으로 모두가 잡히게 되었다고 하여 이아가다와 우수산나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었으나 다행히 현갸오로와 김데레사의 권고로 화해되었다.
7월 29일(9ㆍ19) 현석문은 군문으로 내어 주어 머리를 잘라 매달아 민중을 깨우칠 것이고 나머지 죄수는 포청에 분부하여 경중을 따라 처리하라는 최종 판결이 나림에 따라 현석문은 그날로, 군문효수에 처해졌고 나머지 이가다가 우수사나 등 네 명의 여교우도 이미 장하에 거의 죽게 된 것을 포청에서 교살해 버렸다. 이아가다의 나이는 33세이고 우수산나는 44세였다.
이상 79위 복자의 전기를 끝내면서 지루하고 천편일률의 단조로운 연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4월 이래 일 년 이상이나 계속 읽어주시고 특히 애독하여 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여마지 않는다.
순교자의 전기란 필연적으로 단조롭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의 신앙과 고문에 대한 얘기는 곧 하느님의 사랑에 대하 최대의 증거이고 따라서 무한히 영광스러운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비록 그들의 전기가 한결같이 단조롭고 대동소이했다 할지라고 그것은 우리에게 자극과 감동을 충분히 줄 수 있는 것들이었음에는 틀림없었다. 만약 그간 우리에게 아무런 자극이나 감동이 없었다면 결과적으로 복자들의 모범도 복자들의 전구도 우리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반면에 우리의 성인이 외국 성인에 비하여 조금도 뒤지는 것이 없다고 느껴졌다면 그것은 분명코 우리의 신앙생활을 앞으로 좀 더 적극적인 참여로 자극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끝으로 시복식 때 79위 복자에게 바친 시 한 수를 여기 소개한다.
『그리스도여 오늘날 당신의 풍부한 은총으로 저들에게 사탄과 세속을 이기게 하시고 새로운 언약의 증인이 되게 하셨도다.
오늘날 우리의 순교자들은 승리자의 자격으로 잔치에 참여하였으니 그들의 예복은 어린 양의 선혈로 붉게 물들었음이로다.
우리의 순교자들은 당신을 섬기고 즐겁게 하며 당신 사랑을 본받고 갈바리아로 당신을 따르고자 당신을 위하여 저들의 피를 흘렸도다!』(大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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