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위의 하느님
교회는 한분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데 그 하느님은 동시에 지극히 거룩하시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3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시다.
구약에서는 하느님이 아버지라는 신비가 명시적으로 계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느님이 아버지라는 암시, 아버지 다운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암시는 풍부하다. 하느님은 에집트로 부터의 탈출을 명하실 때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아버지로 계시된다.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출애급4, 22). 이사야는 『야훼여, 당신께서는 우리의 아버지 이십니다』(64, 8)라고 말한다. 시편은『아비가 자식을 어여삐 여기듯이 야훼께서는 당신 경외하는 자들을 어여삐 여기시나니』(103, 13)라고 노래한다. 잠언은 『야훼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꾸짖으시되 귀여운 아들에게 매를 드는 아비처럼 하신다』(3, 12)고 말한다. 구약은 하느님의 부성애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도록 길을 닦았다.
■ 아버지 하느님
예수님에게는 하느님이 그저 『이스라엘의 아버지, 인류의 아버지』가 아니라『내 아버지』이다. 『내 아버지』는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다. 그 아버지는 그분 존재의 기원, 메시아적 사명의 기원, 그분 가르침의 기원이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할 따름이다』(요한5, 19). 『살아계신 아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나는 아버지의 힘으로 산다.』(요한5, 57).
아들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분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낳음을 받았기 때문이다.『너는 내 아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히브리1, 5). 바로 이 낳음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사이에 대단히 엄밀한 상호관계가 존재한다. 오직 아들만이 아버지를 알게 해 주신다. 볼 수 있는 아들이 우리로 하여금 볼 수 없는 아버지를 보게 해준다.
『나를 보았으면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14, 9). 그분은 자녀다운 사랑이 가득한「아빠」라는 말로 자주 아버지를 부른다. 부활 후에는『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희의 아버지 곧 내 하느님이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요한20, 17) 고 하셨다. 이와 같이 아들을 통해서 하느님은 당신의 아버지 됨의 신비를 완전하게 계시하신다.
■ 아들 하느님
교회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의 제2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로 선포한다. 예수께서는 장엄하게 단언하셨다. 『아버지 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 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마태오11, 27). 그분의 계시말씀은 아버지의 증언으로 강화됐다. 특히 예수님의 세례와 거룩한 변모라는 결정적 순간에 아버지의 증언으로 강화됐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오3, 17).
아버지의 계시자이며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자신의 계시자인 그리스도께서는 최후까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진리를 증거 하셨기 때문에 죽으셨다.
그리스도의 증언에 바탕을 두고 교회는 아들 하느님에 대한 교회의 신앙을 고백하고 선포 한다 『하느님으로부터 나신 하느님이시요, 빛으로부터 나신 빛 이시요, 참 하느님으로부터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일체이시며…』(니체아-콘스탄티노플신경) 아타나시오 신경은 이렇게 말한다. 『이 삼위일체 안에서는 아무도 먼저 계시거나 나중에 계시지 않고 아무도 더 크거나 적지 않고 3위 모두가 그들 가운데 함께 영원하시고 함께 동등하시다』.
■ 성령 하느님
교회는 니체아-콘스탄니노플 신경으로 성령에 대한 신앙을 고백 한다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니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좇아나시며,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흠숭과 같은 영광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 하셨나이다』 우리에게 아버지를 계시하신 아들은 또한 성령을 알려주었다. 아타나시오신경은 이렇게 말한다. 『창조되지 않으시고 거대하시며 영원하시고 전능하시며… 세분의 전능한분이 아니라 단한분의 전능하신 분. 그래서 아버지 하느님, 아들하느님, 성령하느님… 세분의 하느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분의 하느님이 존재하는 것이다』.
성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성령에 대해 언급한다. 예수님은 이분을 『또 한분의 위로 자』『진리의 성령』이라고 부르신다.
예수께서는『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주실 성령』이라고도 말씀하시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여 당신들에게 보낼 위로 자』라고도 하신다. 이 말씀들은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에서 성령이 누구인지 우리에게 가르쳐주신다. 따라서 삼위 일체적 의미를 담고 있다. 성령은 신자들의 마음속에 거처하시면서 아버지와의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만남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길」은 그리스도이다.
■ 아버지와 아들의 영(靈)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는 것」과 같이 그들에게서 「파견 된다」. 이 때문에 그분은 「아버지의 영」 「아들의 영」이라고도 불린다. 성령은 「사랑함으로써」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는데 이 「나옴」은 「숨쉼」-사랑의 숨결로 묘사된다. 이 숨쉼은 「낳음」이 아니다. 아들만이 영원한 낳음을 통해 아버지에게서「나온다」. 이 영원한 낳음은 「인식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들과 본질이 같은 「사랑의 영」을 숨쉰다. 그래서 하느님은 영원으로부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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