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영의 백서는 조선 정부의 이 같은 정치 체제에 대한 용감한 도전이었다. 그는 인간의 기본권인 신교의 자유를 거부하고 따라서 천주교를 잔인하게 박해하는 정부는 문책을 당하여 마땅하다고 했다.
이제는 유학 측에서 한 반대를 상기하며 과연 서학 측에서 내세운 주장에는 그릇된 점어 없었는가를 고찰하겠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성리학자들은 서양의 과학에는 전적으로 긍정을 보인 반면에 서양의 종교는 부분적으로 동의하였거나 아니면 전적으로 반대하였다 했다. 유학이 철저한 현세주의요 인륜지상으로 생각한다면 아마도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반면 천주교 학자들은 서양의 종교에는 전적으로 긍정한 반면에 서양의 과학에는 매우 등한시한 감이 없지 않다.
아마 이것이 천주교의 신앙도 현실적인 열매를 맺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물론 교회 초창기의 신도들은 대부분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억압되던 계층이어서 자연히 현실도피적이 되고 염세적이 되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럼에 불구하고 인생관이 좀 지나치게 내세적으로 기울어졌던 것은 부인하기 어려울 듯하다.
또한 세계 종교로 자처하고 타종교를 축출하려는 천주교의 소위 보편주의(世界主義) 즉 그 종교가 국가를 초월하여 모든 민족과 국가에 두루 신봉자를 두었다는 우월감과 자부심은 자기 자신의 국가와 민족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무관심을 나타냈을 뿐더러 자기 종교만이 유일무이한 참된 종교를 모두 악마시하는 일종의 배타주의적 엘리트 의식이었다.
반면 천주교도 사이에 무의식 중에 서양 것이라면 그것이 종교이건 문화이건 망녕된 관념을 낳게 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무엇보다도 황사영의 백서에서 잘 엿볼 수 있다. 그는 교황이 한마디만 하면 중국 황제도 말을 들을 것으로 교황의 권위를 과대 평가하였고 서양 그리스도교국들이 군함 수백 척을 끌고 와서 호령만 한다면 이 나라에 쉽게 문호가 열리고 종교 자유가 올 것으로 서양의 권세를 과대평가 했던 것이다.
이러한 것은 조선 백성으로 하여금 민족 자각을 각성시키고 양이사상을 조성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천주교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이후 특히 거듭된 佛艦의 내항으로 배외사상과 민족적 자주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기해박해 때 순교한 佛人 선교자 3명의 학살을 단서로 그 학살을 문책한다는 명목 아래 佛艦의 내항이 잦게 되었고 그것은 도리어 한국민에게 배외사상과 민족 자주의식을 자극시켰다.
급기야는 동학이 창건되기에 이르렀고 그것은 우선 민속적이고 민족적인 종교로 자처하였다.
최제우는 소위 1860년에 가진 신의 발현과 그와의 문답에서 그가 새로운 민족종교 창건에 불리웠음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상제가 나타난 까닭을 물으니『너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법을 가르치게 하기 위해서이다』『그러면 서학으로써 하리이까』『아니다. 서학 대신 내가 가르치는 교리로 할 것이고 그것을 동학으로 이름하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동학은 전형적인 종교의 혼합주의로서 보통, 儒ㆍ佛ㆍ仙의 혼합이라고 한다. 그는 이렇게 하여 아마도 동양종교를 창설하려 하였고 무엇보다도 민간신앙을 받아들이고 그에 뿌리박음으로써 민중적인 종교가 되려 하였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그의 종교적인 체험의 특징은 민족주의적 자주의식에서 온 것이었다. 동학은 儒ㆍ佛ㆍ仙 외에도 천주교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는데 우선 그 신을 가리키는「천주」라는 이름에서 쉽게 엿볼 수 있다.
이 천주란 개념은 후에 또 얘기가 절대로 우리의 천주와 같은 것이 아니고 거기선「상제」「한울임」「옥황상제」등이 복합되어 있는 것이다. 여하간 동학이 서학을 의식하고 일부러 동학이라 명명한 데는 서학이 적어도 간접적으로 책임이 있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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