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C본당에 있을 때에 공소 방문하기에 가장 곤란을 겪었던 곳이 N공소이며 반면에 신앙 면에서 튼튼한 위로를 받은 공소도 바로 이 N공소이다.
이 N공소는 본당에서 30리 가량 떨어진 첩첩 두메산골에 있는 조그마한 부락이다. 그러나 이 공소의 역사는 교구 발상지의 근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N공소는 옛날 박해시대 때 교우들이 숨어 살았던 피난지였다. 그리고 또한 상당한 신자들이 관가에 잡혀 치명을 당했던 순교지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순교한 안 주교님의 기록에 의하면『그 지방은 매우 적고 매우 의심을 받는 지대로서 20명 내지 30명밖에 집합할 수 없는 공소다. 그러나 이 지방은 큰 읍내의 작은 핵심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다행한 지방이다.
이 큰 읍은 여러 시기에 순교자들의 상당한 수로 유명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하여 내가 당시 본당 임시 주임이시던 P 신부님께 말씀드리자 신부님께서는 다시 교구청의 여러 신부님들과 저명인사들과 협의해서 그해부터 이 지역을 성지순례 지역으로 정하고 매년 교구 연합회의 모든 액션단체들이 복자성월 때마다 순례를 오고 있다.
옛날 공소는 여기에서 10리 가량 더 골짜지로 들어가서 팔공산 줄기의 깊숙한「한퇴」부락에 있었다. 그러나 박해가 끝나고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되자 지금의「원당」으로 옮겨 왔다. 이 N공소의 교우들은 순박하기가 이를 데 없이 선량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대개 산 비탈의 천수답 몇 마지기나 산채밭을 일구어서 겨우 생활하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더구나 금년처럼 모내기 때 비가 오지 않으면 그곳 주민들의 생계는 막연하였다. 가뭄으로 모내기를 못한 전답에다 겨우 메밀이나 조를 갈아서 끼니를 때워야 했었다. 그 당시에는 매년 자주 가뭄이 들었던 탓으로 내가 매주일마다 그 공소에 나가서 식사 대접을 받기란 여간 송구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본당 신부님이나 나는 항상 이 공소를 방문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이 지방 주민들을 잘 살게 하는 비결이 없을까 하고 고심을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마침 공소 회장님과 부락민들이 길 닦는 사업을 위해서 교회에 의논을 하러 왔었다. 우리 교회에서는 가톨릭구제회에 연락을 해서 구호공사로 도와주기로 하고서 우선 구제회에 보낼 설계 도면과 공사 내역 등의 서류를 당시 구라사업 관계로 경험이 많은 칠곡 피부과병원 사무장에게서 지도를 받아 3일동안 준비한 끝에 완성을 했었다. 얼마 후에 가톨릭구제회에서 서류심사에서 합격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락민들과 우리들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당시도 올해처럼 모내기 때 가물었던 터라 가뜩이나 모내기를 못해 우울했던 농민들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듯이 기뻐했었다.
그래서 부락민들은 구제회의 밀가루가 도착하자마자 열심히 온 마을 사람들이 동원이 되어서 마을길을 닦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바람이 나서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양의 공사를 하였다. 그때부터 이곳 주민들은 정부에서 권장하는 뽕나무 심기 즉 양잠사업에 적극 힘써 갑자기 부자마을이 되었다. 20년 전 사라호 태풍 때 산사태가 나서 50여명의 인명이 살상했던 그 폐허의 땅에서 이렇게 훌륭한 기적이 일어난 것은 순교자의 얼과 그곳 주민들의 순박하고 선량한 마음씨와 부지런한 노력 덕분이라 하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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