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지난 5월 1일과 2일 양일에 거쳐 다섯 번이나 있었던 일본「아끼다」시「목각 성모상의 눈물」현상을 목격한 53명의 증인들이 모여 좌담회를 열고 주고받은 증언 내용이다.
동경「고지마찌」에 있는「오지마」(大島義和)씨 댁에서 열린 이 좌담회에는 한 잡지사 기자도 동석했는데 이 글은 그 기자가 당시의 증언 내용들을 간추려 모은 것으로 성모상의 이 기현상을 더한층 실감나게 해 주고 있다. (편집자註)
①川畸弘씨(明治고무化成 근무ㆍ39세)의 증언
우리들은 길상사(吉祥寺)와 소금정(小今井) 浦和지방 교회에서 순례간 자들이었다.「아끼다」성모상 눈물에 대해서는 소문과 매스콤을 통해 들은 바밖에 없었다.
우리 일행들은 작년 10월과 금년 봄에「아끼다」로 순례길을 떠나자고 누차 상의를 하여 왔다.
그러다가 결국 금년 들어 성모성월에는 꼭 순례길을 떠나기로 상약을 하였다. 얻기 드문 휴가를 얻었고 또 5월 1일은 성요셉축일도 겹쳐 금상첨화격이었다. 성요셉회 회원인 우리들은 이번에 꼭 가서 성모마리아동산 조경작업(造景作業)에도 협력하기로 결심하였다.
②小野文雄씨(武藏野市役所 근무ㆍ40세)의 증언
5월 1일 오전 5시 반에 길상사(吉祥寺)에 집합하여 차 두 대에 분승하여「아끼다」로 향하였다. 일행 열 명이 두 차에 타고 가면서 휴게소 다섯 군데서 잠시 휴식하며 매번 두 차의 멤버들이 차를 번갈아 바꾸어 탔다. 그런데 서로 낯을 익히고 알게 된 처지가 되었어도 급히 모든 속력 때문에 긴장해서인지 아니면 순례 목적에 대해 너무 감격했기 때문인지 별 말들이 없어 우리는 다시 서로 인사하고 통사정함으로써 긴장을 풀게 돼 참 다행한 일이었다.
대화 중에는 물론「목각 성모상의 눈물」도 화제에 올랐지만 전 세계 6억7천만 가톨릭 신자 가운데 가장 신자 수가 미약한 일본에서「우리의 효과적인 포교점은 어디에 있는가?」하는 진지한 토의도 기탄없이 털어 놓았다. 양쪽 차 속에서의 토론의 초점은「토착화」문제였다.
너무 이 문제에 열중하다 보니「성모의 눈물」을 어서 가서 목격하자는 속셈은 잠깐 마음 속에만 간직하였었다.
③三枝信義씨(변호사 52세)의 증언
드라이브를 즐기며 자가 운전하는 나로서는 처음 가는 순례길이기도 하여 긴장을 하였던지 별로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
「사게다(酒田)」에 겨우 도착하여 보니 벌써 오후 다섯 시가 지났다. 거기서「아끼다」수녀원에 전화를 걸었다. 저녁 8시가 지나야 수녀원에 도착할 것 같아 숙소 예약 겸 건 것이다. 도착해서 들으니 벌써 그날(주ㆍ76년 5월 1일 성모성월 첫날) 세 번이나 목각 성모상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①아침 7시 20분과 ②오전 9시 반과 ③오후 4시 20분이었다고 야단법석이다. 내가 중도에서 전화를 걸었을 적에 이 눈물의 기적을 말하면 너무 당황해서 차를 과속으로 달리다가 교통사고라도 낼까 하여 일부터 이 이야기는 않았다고 도착한 나에게 전해온 이들이 얘기해 주었다. 우리들은 그것도 전연 모르고「아끼다」에 도착하여 태연스럽게 수녀원 안으로 차를 들이몰았다.
차를 대어놓고 일행이 쭉 내리니 야스다(安田) 신부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면서『벌써 듣고 왔지요 오늘 된 일을…』하신다. 즉 그날(5월 1일) 세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들었고 별르고 별려 왔는데 그 눈물을 못 봐서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고『참 분한걸』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또 기적이 있었군요!』하면서.
④川島美都雄씨(회사원 52세)의 증언
내가 수도원에 도착하자마자 이 기적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그때의 기분은 그저 담담했다.
꼭 내가 성모님의 눈물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의 자세로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저-런!」하는 감탄사만 냈다.
⑤三枝씨의 증언
「동경 록뿡기(六本木)」교회에서 간 순례자 중에는 한국인 신자도 7명이나 참석하여 일심정력으로 기도를 드리고 또 같이 기도하며 미사에도 같이 참여하였다. 남자 숙사와 연결된 성요셉관(館)에 가서 저녁식사도 같이 하였다. 벌써 밤 아홉 시가 넘었으니 아주 늦은 저녁식사였다.
그 저녁식사 도중에 별관에서 전화가 왔는데 야스다(安田) 신부님이 전화였다.『지금 또 성모상에서 눈물이 나옵니다』하자 성요셉관을 뛰쳐나왔다. 바로 성당으로 달려가 보니 벌써 사세야마 수녀는 제대 앞 다다미 위에 끓어 엎드려 있었다. 나는 사세야마 수녀님 바로 옆에 바싹 다가않아서 보니 틀림없이 목각 성모상은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나도 다다미 바닥에 고개를 숙이고 마음이 부셔지는 듯 내 일생의 모든 죄를 절절히 뉘우치고 통회하였다. 제일 먼저 성당에 들어온 小野씨와 나는 둘이서 흑흑 느껴가며 울음을 간신히 머금고 그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우리 뒤를 이어 다른 이들이 죽-들어왔다. 그때 야스다(安田) 신부님은『자! 여기로 더 가까이 바싹 다가오셔서 저 눈물 흘리는 목각 성모상을 바라보십시오』하셨다. 다 같이「묵주의 기도」가 시작되었을 적에 나는 제단 발치까지 바싹 다가갔는데 주체할 수 없도록 내 눈에도 눈물이 자꾸 흘러내렸다.「묵주의 기도 제2단」을 통경할 때 성모님의 눈물은 그쳤다. 그때 그 눈물의 분량은 다음날(註 5월 2일의 일)보다 상당히 많은 양이었다.「기도가 끝나고서야 모두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 식사를 계속했다. 식사 중에는 한 사람도 떠들거나 이야기하는 이가 없이 무거운 침묵 속에서 식사만 들었다.
『너무들 감격해서 말이다』.
※註=그때 사세야마 수녀님에게 성모님이 내려주신 메시지는 그 수녀의 수호천사를 통해서 들려졌다. 그 메시지 전문은 다음에 소개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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