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추기경은 하루를 어떻게 지낼까? 추기경의 일과는 주교관 3층에 있는 조그마한 성당에서의 아침미사 봉헌으로 시작된다. 조반을 들면서 영자(英字)신문을 포함한 조간(朝刊)신문들을 모두 읽는다. 텔레비젼은 거의 시청하지 않는 반면 신문만은 자세히 보는 편이라는 게 비서신부의 얘기다.
오전 10시쯤부터 일반 접견이 시작되어 낮12시까지, 이어 오후 3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계속된다. 추기경을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다. 우선 교구 내 본당만 해도 90개나 되고 수많은 수도 단체와 교회 기관들이 거의 2백 개나 즐비해 있다. 산하 기구마다 교구 본부와 상의해서 해결할 문제들이 적지 않다. 추기경 면담을 요청하는 사람이 교회 내 인사들만일 수 없다. 서울대교구가 한국 교회를 대표하지 않는데도 정부 기관이나 일반 사회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교회에 관한 문제는「서울」「명동」「김 추기경」과 연결시킨다. 그 밖에 추기경이란 신분 때문에, 외국 대사들이 부임하거나 이임할 때는 으레 인사차 추기경을 예방한다. 교회와 관계되는 중요 관직에 임명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면담 시간이 넉넉해야 할 문제를 안고 오는 사람들에겐 저녁 7시30분 이후에 접견 시간이 마련되는 때도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엉뚱한 면담 요청자도 있다.『추기경을 한 번만 만나면 지병이 났겠다』고 떼를 쓰는 정신 이상자도 찾아든다.
이 같은 모든 접견을 물론 공식 일정이 없는 경우에 한한다. 추기경의 공식 스케줄이 복잡함은 거실에 결려 있는 달력이 잘 일러준다. 날짜 아래 빈 칸이 없을 정도로 새까맣게 무언가 적혀 있다. 교회의 중요 행사를 주재함은 신문에 보도되는 바와 같고 기사화되지 않는 여러 수도회의 서원식을 주례한다. 본당 방문도 매주에 한 번 하더라고 약 2년은 걸려야 90개 본당을 순회할 수 있다. 본당에서 견진성사가 거행될 때는 일반 교우들을 접촉할 기회가 된다. 그리고 외부의 공식 초청에는 꼭 참석할 자리에만 응하는 편이란다.
김 추기경은 교회의 축일에 발표되는 사목교서나 교회 혹은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는 시간이 없어 며칠 밤을 세워서라도 직접 집필한다. 외국에 유학 중인 20여명의 신부들에게 보내는 서신도 비서신부들에게 대필시키지 않는다.
추기경에게도 휴식이 없는 건 아니다. 낮 12시 점심식사 후 약 30분과 오후 6시 저녁식사 후 약 30분간은 교구 본부 신부들과 주교관 뜰을 산책한다. 저녁 스케줄이 없는 날은 신부들과 바둑을 두기도 하고, 혼자 음악 감상을 하기도 한다. 주로 현대 종교음악과 고전음악을 감상하고 특히 마테오 수난곡을 제일 좋아한단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항구심이 강해 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 선진국에서 발행되는 각종 신학잡지 특히 새로운 영성(靈性) 교회 쇄신의 실제(室際) 등을 내용으로 한 책들을 탐독한단다.『그러니 생각을 너무 깊이 하게 되고 그 때문에 결단하기에 앞서 일을 어쩌면 너무 여러모로 살피게 되고…』하며 측근 신부들은 웃는다.
김 추기경은 일반 서민들의 생활과「생색 안 내고 파묻혀 사는 사람들」특히 정말 어렵고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어쩌다 틈이 나면 사복 차림으로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고 시정(市井)생활을 살펴보기도 한다. 이 같은 암행(?)은 얼굴이 너무 알려진 탓으로 저녁에 이뤄진다. 어떤 때는 막노동으로 수도하는 예수의 작은 자매회나 형제회를 불시에 방문하기도 하고 근로자회관 또는 농아 자활원 등을 예고 없이 찾는다. 그런 곳에서 그들이 평상시에 먹는 대로 된장찌개나 한 그릇 소박하게 차린 식사를 함께 들며「아무 격식 없이 부담 없는 대화」를 나누기를 좋아한다. 이 같은 부담 없는 대화는 김 추기경의「오락」이기도 하단다. 그러나 어느 특정 교우의 집을 방문하는 일은 거의 없고 의식은 잘 안 하는 편이란다.
3ㆍ1사건 공판이나 시인 김지하에 대한 공판을 자주 방청하는 것도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의 발로라 하겠다. 월 3만 원에서 출발하여 근 10년에 걸쳐 겨우 월 10만 원으로 인상된 봉급도 이러저러한 관심사에 모두 투입된단다.
봉급은 직접 만져보지도 않고 경리수녀 손에서 추기경의 지시에 따라 지출되기 때문에 수입 지출이 공개돼 있고, 기밀비도 없으니 사실상 무일푼인 셈이다. 미사 예물도 주로 보좌신부들로 구성된 젊은 신부들과 공유제(共有制)를 실천하기 때문에 사용(私用)으로 쓰지 않는다. 그래서 비서신부는『보기 드물게, 물욕이 전혀 없는 분』이라고 단언한다. 담배는 많이 피우는 편이나 술은 한두 잔 정도. 음식은 별스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잠을 못 이뤄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건강 상태는 은근히 강단이 있다는 편이고, 최근에 배운 유기를 운동 삼아 저녁에 때때로 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