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인이 되신 W 신부님께서 우리 본당에 부임하실 때의 일이다. 모든 신자들은 가시는 신부님과 새로 부임하시는 신부님을 전송하고 영접하기 위해서 교회 마당에 모여 있었다.
모두들 가시는 신부님께는 그동안의 정이 아쉬워서 섭섭해 하면서도 한편 새로 부임하시는신부님께 새로운 기대로 본당 운영에 대해서 설계를 짜보는 것이 우리 신자들이었다.
그러기에 교회 사목회장 이하 사목위원들과 모여 있던 신자들은 오래 전부터 사회사업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W 신부님께서 본당 신부로 부임하시기에 또 교회 사업을 본당 신부님을 도와서 힘차게 해볼까? 하고 자못 마음이 설레이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6개월 동안 임시 본당 신부님을 모시고 있었던 터라 더더욱 교우들의 마음은 간절하였다. 이제 가시는 신부님의 이삿짐이 다 실려나가고 새 본당 신부님의 이삿짐이 들어왔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일까? 새로 부임하시는 본당 신부님의 이삿짐은 너무나 초라했다. 정말 부자 신부란 소문만 났었지 실제 W 신부님의 이삿짐은 가시는 신부님에 비해서 반절도 되지 않았다. 낡은 고리짝 몇 개와 헌 책들뿐이었다. 이삿짐을 다 정리하고 난 신자들은 『야, 정말 W 신부님께서는 검소하게 사셨구나!』하고 한 번 더 감탄을 했다. 그리고 신부님께서 많은 사업을 하셨다는 것도 바로 당신 생활의 근검절약에서 시작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신부님은 연세가 높으시지만(69) 열심히 교우 가정을 방문하고 전교에 전심전력을 다하셨다. 매월 부락에 나가 미사를 봉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셨다. 또 한편으로 신부님께서는 새로이 결핵 환자들을 위한 요양원 사업을 하시기 위해서 후보지를 여러 곳에 물색하셨다. 그러나 원래 이 결핵사업은 위생과 직결되는 것이라서 후보지 선정에 있어서 주민들로부터 많은 반대를 받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우리 신자들은 결핵퇴치사업을 그만 두고 신부님께서 전임지에서 하셨던 학교사업을 하자고 권고했다. 그러나 신부님께서는 교육사업보다 이 결핵사업이 지금 우리나가 실정으로서는 우리 사회를 위해서 더 필요한 것이라면서 끝까지 밀고 나가셨다. 그 후 신부님은 중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러나 신부님께서는 자리에 누워 계시면서도 가난한 신자들이 병으로 앓고 있으면 애긍을 베풀으시고 본국 독일의 은인들로부터 부쳐온 구호 약품을 나누어 주셨다. 조금만 병세가 호전되면 중단했던 부락 방문을 다시 하고서 미사를 봉헌하셨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본당에서 조금 떨어진 D동에서 부락미사가 있었다. 이 D동은 신자들이라야 부인네들 몇 가정뿐이었다. 그래서 부락 반장인 권인나씨가 신부님의 처지가 너무나 딱해서『신부님 우리 부락에는 여교우들 몇 사람뿐이고 또 모두들 열심하니 우리 부락은 너무 걱정을 말으시고 자주 나오시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몸도 많이 불편하신데!』하고 몇 번 권했다. 그러나 신부님은 처음엔 몇 번 말로서만 거절하시다가 그만 화를 벌컥 내셨다.
그 후 신부님께서는 기어이 일어나시지 못하고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권안나씨랑 D동의 여교우들은 그때의 그 일이 못내 생각이 나서 더욱 다른 교우들보다도 통곡을 많이 하셨다.『신부님 저희들이 정말 잘못 했습니다. 용서하십시요』라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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