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며칠 안 있으면 추석입니다.
어머니와 동생들 그리고 저는 송편을 조금 빚어서 둘러앉아 의좋게 먹을 것입니다. 차례랄 것도 없이 밥상을 잠시 아랫목에 돌려놓고 조상님의 일을 생각할 뿐입니다. 우리 식구는 또 남들처럼 산소에 가지를 않습니다. 왜냐구요. 갈래야 갈 산소가 없으니까요.
아버진 막된 길로 돌아가셔서 우리와 함께 안 계신다면 추석 때마다 산소를 찾아가는 애틋함이라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살아계십니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살고 계십니다!
제가 어릴 적 다섯 살 때까지만 해도 비록 수원 근방 초라한 농촌 생활이긴 했지만 우린 행복하게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오랜만에 돌아오신 아버지가 방직공장에 다닌다는 아가씨와 함께 집으로 오셨습니다.
『여보 이 아가씨는 날 오빠 같이 따르는 사람이야. 당신도 동생 같이 생각하구료』
『잘 되었어요 당신 누이동생도 없으니 내겐 시누이가 한 분 생긴 셈이군요』
어머니는 그 아가씨를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그 누이 동생이라고 하는 여인이 우리 가정을 발칵 뒤집어 놓을 줄이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그 여인이 업고 들어온 갓난아이가 바로 우리들의 동생이라니 어머니는 기절할 듯 놀라셨습니다. 며칠을 우리와 함께 살다 제풀에 지쳐 그 여인은 아이만 남겨 놓고 도망쳐 버렸습니다. 고아원에 갖다 줘 버리라고 소리치는 아버지 그러나 어머니는 그 핏덩이에게 자신의 젖을 물리며 그 갓난아이를 키우셨습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매일 술타령이고 며칠씩 외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어디로 가셨는지 얼굴조차 볼 수 없게 된 아버지.
어머니는 그런 가운데서도 아들을 낳으시고 몸도 추스리기 전에 논에 나가 아버지 대신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논에 나가시어 누렇게 익고 있는 벼 이삭을 보시며 우셨습니다.
『엄마 아버지 생각 나서 그래요?』
『아니다 먹을 것이 다 떨어졌어. 저거라도 미리 베어다 저녁에 끓여야겠다』
어머니는 벼 이삭을 베러 논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아니? 뉘 논인데 함부로 들어가 벼 베는 거여?』
이웃마을 할아버지가 노발대발 따라오셨습니다.
『누구 논이라뇨? 여름 내 땀 흘려 가꾼 내 논 우리 변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꺼?』
어머니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물었습니다.
『흥 어림없는 소리 벌써 한 달 전에 이 논은 우리가 산 거야. 이 농사 지은 것까지 몽땅 당신 남편이 우리한테 팔았는데 내 문서를 갖고 와 봐야 알겠소?』
아버지는 노름 빚 때문에 결국 우리 온 식구의 목숨인 논 문서를 넘겨주었던 것입니다. 그해 겨울을 반은 굶으며 어떻게 지냈는지 모릅니다. 봄이 오자 우리는 시골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영등포시장으로 가서 김치도 받아다 팔고 박물장소도 하시고 밑천이 떨어지면 막노동도 하시며 우리 삼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얼마나 아끼고 알뜰하게 살림을 하셨는지 일 년 만에 시골에 밭 6백 평을 다시 샀습니다. 희망은 우리집에 다시 깃들기 시작했나 봅니다. 어느날 국민학교에 갔다 온 나는 갑자기 배가 아파서 뒹굴었습니다. 가까운 한약방에서는 횟배라고도 하고 또 어느 병원에서는 간디스토마라고도 하지만 내 배는 점점 더 부어오르고 나중에는 숨이 끊어지는 듯했습니다. 서울로 무작정 나를 업고 올라온 어머니는 종합병원으로 찾아갔습니다. 간염이란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이미 때가 늦어 그냥 시골로 내려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죽을 날만 기다리는 나를 보다 못해 어머니는 한 푼이라도 약값을 벌기 위해 다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마지막 방법으로 서울에서 잘 살고 있는 큰아버지댁에 편지를 띄웠습니다. 어머니는 절대로 남의 도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편지를 띄웠던 것입니다. 그날따라 벌이도 신통치 않아 절망을 안고 돌아오신 어머니 앞에 큰아버지로부터 한 장의 편지가 왔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호순이 어머니 이젠 살게 됐나 봐요』
『호순이 백부님은 남을 도와주는 분이 아닌데요. 우리도 도움 받기를 원하지 않고』『무슨 소리예요 호순이가 죽어가는데 어서 뜯어보시라구요』
동네 아주머니들의 기뻐하는 목소리 그러나 편지의 사연은 큰어머니의 해소병 때문에 약값을 보태줄 수가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행여나 하고 기대했던 우리들 모두는 눈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셨습니다. 우연히 의사에게 시집 간 고모를 길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언니 세상에 그럴 수가 이사를 가버리다니…어서 호순이 업고 우리 병원으로 가십시다』
나는 고모부의 병원에서 구사일생 목숨을 구했습니다.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수술을 마친 나는 회복 후에 고모부의 도움으로 여학교까지 마치고 지금은 모회사에 나가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조그마한 가게를 차리고 동생들도 모두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고모와 고모부 그리고 착한 이웃들의 덕택입니다. 세상은 남을 돕지 않은 사람도 많지만 서로 도와주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도 이젠 남을 돕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다만 돌아가시지 않으면서도 우리와 함께 안 계신 아버지, 그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다시는 우리 아버지와 같은 분들이 나타나지 않기를, 그래서 엄마와 같은 뼈 아픈 희생이 세상에 없기를 두 손 모아 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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