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지 어언 1백90여년. 그동안 순교 선열들의 피 어린 발자취 위에 성장해온 한국 가톨릭 교회는 해마다 복자성월을 맞아 이들 가신 님들의 위엄을 추모ㆍ순교정신 앙양을 위한 각종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이들 순교자들이 어떻게 그들의 신앙을 증거했고 또 죽어갔는지 그 순교 성지와 유물 및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에 본보는 서울 가톨릭교회사연구소에 소장된 교회 사료 중 순교에 얽힌 사료만을 골라 소개, 다시 한 번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한 순교 선열들의 거룩한 그 얼을 현양하고자 한다. <편집자 註>
박해시대의 한국 교인들이 청나라 북경 교회나「로마」교황청에 보내는 청원문을 비단에 써 올리는 것이 상례였다.
이 비단에 쓴(帛書) 청원문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 황사영 백서이다. 이 백서는 1801년 신유박해를 받자 충청북도 제천의 배론(舟論) 땅(현 충북 제천군 봉양면 구학리)에 피신한 황사영이 그해 10월 29일자로 작성한 것으로 당시 한국 교회를 맡았던 북경교구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는 청원문이다.
황사영은 가로 62cm 세로 38cm 크기의 흰 명주에 정해의 가는 붓글씨로 박아 쓴 1만3천3백11자의 이 백서에서 신유박해의 전말과 순교자들의 양력을 상세히 보고하고 당시 국내 사정을 분석하였으며 한국 교회의 재건과 신앙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다섯 가지 방안을『눈물 흘려 울며 호소한다.』
그 방안이란 ①서양제국에 애걸, 자금(교회 유지)을 마련해 줄 것 ②한국 사람을 북경에 보내 중국인에게 우리말을 가르쳐 국경지대에 이주시켜 비밀 왕래와 연락에 편리하게 할 것 ③교황이 청국 황제에게 글을 보낸 조선으로 하여금 선교사를 받아들이게 할 것 ④청국 황제를 설득, 조선을 청의 속국(屬國)으로 만들어 친왕으로 조선을 감독케 할 것⑤외국 배 수백 척에 군사 5~6만 명과 대포 등 날카로운 무기를 싣고와 위협하여 선교사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으로 이조 후기의 국내 정세 외교문제 정치 사상 경제 등 다방면에 걸쳐 박진력 있게 묘사된 사실성으로 근대사 파악에 드높은 사료적 가치를 갖는다. 다만 종왕국 청의 황권과 외세의 무력을 이용해서까지 신앙 자유를 실현하려 했다는 부화사상 내지 사대주의 비판 시비는 전문가의 부연보다는 직접 읽고 배면에 깔린 황사영의 진의를 파악함으로써 이해해야 할 것이다.
백서는 북경에 보내기 전에 황사영의 체포로 압수되는데 백서로 인해 내국인으로 내세웠던 중국인 주문모 신부의 처형 사실이 밝혀져 청에 대해 곤란한 입장이 된 조정은 이 백서를 위정자의 입장에 유리하도록 줄인 위조 백서를 사건의 전말을 보고하는「討邪秦文」과 함께 전주교도들의 음흉한 음모를 내세워 박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과 주문모 신부 처형의 증거로 청에 제시했던 것.
조정이 위조한 백서를「假帛書」라 부른다.
황사영 백서와 가백서는1894년경 포도청 의금부 등에서 문서를 정리 소각할 때 발견되어 당시 한국교구장 뮈뗄, 민 주교가 입수, 1925년 79위 복자 시복 기념으로 교황 삐오 6세에게 헌납되어 현재 교황청 고문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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