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이신 한분의 하느님
1. 삼위이신 한분의 하느님
…4세기 위대하 니체아ㆍ콘스탄티노플공의회에 뒤이어 똘레도시노드(6백 75년)는 이와 같이 간결하게 삼위이신 하느님에 대한 교회의 신앙을 표현했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바오로 6세께서「하느님 백성의 신경」에서 앞의 교리에서 이미 인용한 다음의 말로 같은 신앙을 표현했습니다.『각기 하나이시며 같으신 하느님삼위를 이루는 상호관계가 바로 인간의 이해를 무한히 초월하시는 하느님의 깊고 거룩한 생명 이십니다』
하느님은 표현할 수 없고 파악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본질적으로 불가해(不可解)한 신비이며 그분에 대한 진리를 우리는 앞에서 그려보고 노력했습니다. 우리 신앙의 하느님의 내밀한 생명이 표현되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대전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더욱 더 큰 확신으로 되풀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세위격안에 신성이 말할 수 없고 불가해한 신비입니다. 『당신이 그것을 파악한다면 그런 분은 하느님이 아닙니다.』
성삼신앙과 유일신 신앙
2. 그 때문에 바오로 6세께서는「하느님 백성의 신경」에서 계속 이렇게 말합니다.『많은 신자들이 우리와 함께 비록 성삼의 신비를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사람들 앞에서 한분이신 천주를 증거 할 수 있게 된 것을 전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거룩한 교회는 성삼신앙에서 한분의 하느님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과 일치되어 있다고 느낌니다. 성삼에 대한 신앙은 유일신에 대한 진리를 침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풍요로움, 그 신비스러운 내용, 하느님의 내밀한 생명을 명백히 해줍니다.
성삼계시는 신약 안에
3. 이 신앙은 신약의 계시 속에 그 원천-그 유일한 원천-을 갖고 있습니다. 오직 이 계시를 통해서만 삼위의 하느님에 대한 진리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하느님 안에 숨어있는 신비들 중』하나인데『-l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르면-그 신비들은 계시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헌장 「하느님의 아들」Ⅳ).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교의는 그리스도교에서 항상 신비로, 가장 기본적이고 불가해한 신비로 여겨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친히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아버지 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또 그 아들이 아버지를 계시하여주려고 택한 사람들 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마태오11,27).
1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르치듯이 『하느님의 신비들은 그 성격상 창조된 지성을 대단히 초월해서 계시에 의해 알려지고 신앙에 의해 받아들여져도 똑같은 신앙의 베일로 덮이고 이죽을 생명을 사는 한 일종의 어두움에 둘러싸여있습니다.
「우리가 육체에 머물러있는 동안에는 주님께로부터 멀리 떠나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Ⅱ고린토5, 6)』(상동).
이 말은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의 신비에 특히 유효합니다. 계시 후에까지도 그것은 가장 심오한 신앙의 신비로 남아있어 지성은 스스로 그것을 파악할 수도 없고 통찰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빛을 받은 지성은 그 교의의 의미를 어느 정도 납득하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삼위의 하느님의 내밀한 생명의 신비를 인간에게 가까이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위격적인 하느님
4. 이 고상한 작업을 이행하는데-많은 신학자들과 무엇보다도 교부들의 작업을 통해서든지 또는 공의회들의 결정에 의해서-「본성」(또는 본질)의 개념과 구별되는「위격」의 개념은 특히 중요 하고 기본적인 것으로 나타남니다. 한 위격은 구체적인 인간으로서,
인성(人性)을 지닌 개체로서 즉 인간 본성을 지닌 개체로서 존재하는 남자나 여자입니다. 본성(본질)은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그것 이게 하는 모든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우리가 「인간본성」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인간의 본질적 구성요소들과 속성들과 더불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구별을 하느님께 적용시켜 우리는 절대적으로 오로지 하느님으로서 존재하는 분에게 속하는 본성의 유일성(단일성)을 인식합니다. 동시에-지성의 빛만으로 그리고 더구나 계시의 빛으로-우리는 그분이 위격적 하느님이라는 확신을 발전시킵니다. 세위격의 하느님 존재에 대한 계시를 받지 않은 이들에게 까지도 창조주하느님은 위격적 존재로서 나타나야합니다.
사실 위격은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것이기 때문에(id quod est perfectissimum in toa natura성 토마스 「신학대전」I, Q29 aㆍ3), 이러한 성질을 그분의 무한한 초월성을 생각해서도 충조주에게 귀속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상동 C.et ad Im)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비 크리스찬 유일신종교들은 하느님을 세상에 비해 무한히 완전하시고 절대적으로 초월적인 위격으로서 이해합니다.
모든 다른 믿는 이들의 목소리에 우리 소리를 일치시키면서 이 순간에도 살아 계시고 위격적인 하느님께, 세상을 창조하셨고 선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모든 것이 근원이신 한분의 하느님께 우리 마음을 들어 높입시다. 그분께 찬미와 영광이 영원토록 있어 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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