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 산새들의 새벽을 알리는 지저귐 소리와 함께 대구대교구장 서정길 대주교의 하루 일과는 시작된다.
경북 칠곡군 동명면 구덕동 뒷산 기슭에 자리잡은 성가양로원의 새벽-. 노목자의 잔기침 소리가 계곡의 새벽 공기에 울려퍼지면 이방 저방에서 새벽잠을 깬 노인들이 양로원 구내 제단 앞으로 모여든다.
오전 6시 노인들과 함께 드리는 이 미사가 서 대주교의 하루의 첫 일과이다.
갖가지 과일들이 초가을의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탐스럽게 영글어가는 3만여 평의 성가양로원 과수원 어귀에 서 대주교의 처소는 자리잡고 있다.
방 주인의 성품을 말해주듯 아무런 장식도 없는 5평 남짓한 거실에는 해묵은 응접 셋트가 놓여 있다.
방충망 사이로 불어오는 계곡의 가을 바람이 스산한 느낌마저 주는 방 안 탁자 위에는 각종 서류들이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다. 이문희 보좌주교가 자유스러운 전원생활 가운데서도 교구 내 사목ㆍ행정 전반에 걸친 문제들을 잠시도 쉬지 않고 분석, 검토하고 있는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아침미사에 이어 7시30분 빵으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면 2~3일에 한 번씩 한꺼번에 배달되는 신문을 읽는다.
밀려서 오는 신문들이기에 소식들은 벌써 구문이 됐지만 그래도 뉴스란은『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알아야겠기에』하나 빼지 않고 다 읽는단다.
정기적으로 교구청에 나가는 날 이외에는 3만여 평이나 되는 과수원을 돌아보며 조용히 명상에 잠기는 것이 거의 일과처럼 돼 있다.
그러나 교구에 갑자기 급한 일이라도 생기면 교구장을 찾는 전화가 바쁘게 울린다. 이 통에 서 대주교를 찾아 멀리 양로원까지 온 방문객들은 흔히 헛걸음을 치기도 한다.
서 대주교를 찾는 방문객들은 지방 촌로들에서부터 정부 고관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각 단체에서 찾아오는 양로원 위문객들도 빠짐없이 대주교를 찾아 문안을 드린다. 교구 내 사제들과 평신도 지도자들도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이곳을 다녀간다. 이들을 맞을 때마다 서 대주교는 항상 어버이 같은 지상함으로 각자가 자기의 맡은 바 직무에 열과 성을 다해 주길 간곡히 당부하고 보낸다.
최근에는 손끝에 난 습진을 치료하기 위해 독한 환약을 복용, 위장을 해쳐 고생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교구 내 큰 행사에는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는데 이때에는 위장 장애로 식사를 제대로 못해 주위에선 식사문제에 크게 신경들을 써야 되는 듯.
주교회의나 전국 규모의 큰 행사에도 거의 참석하고 있다.
중대 문제를 처리해야 할 때에는 며칠을 두고 고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때 홀로 제단 앞에서 묵상하는 서 대주교의 모습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고 축근에서 전한다.
심사숙고한 끝에 얻어진 결정이기에 서 대주교의 주장은 항상 날카로우면서도 굽힐 줄 모른다. 서 대주교가 오늘의 위치를 굳힐 수 있었던 것도바로 이런 깊고도 날카로운 통찰력 때문일 것이라는 게 세평이기도 하다. 이처럼 매사를 신중히 처리하는 서 대주교도 뼈 아프게 후회스러운 일이 있다고 털어 놓는다.
1970년에 복자성당을 건립했던 일이 바로 그것. 대구 시내에 있는 순교 성지「관덕정」을 방치해 두고 순교와는 하등 관계도 없는 신천동에 복자성당을 건립한 것은 크게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단 몇 평의 땅이라도 구입, 순교 기념비라도 세워야겠다는 집념은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으나 엄청나게 오른 땅값으로 그 꿈은 실현을 보지 못하고 있다.
평소 과묵한 성품으로 인해 엄하기로 소문난 서 대주교이지만 가까이 그를 모셔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상한 그 인간미에 새삼 놀라곤 한다. 52년 계산동 주임신부로 재임 중 성당 강당이 포로수용소로 쓰여지게 되어 그 안에서 기거하던 3백여 명의 피난민들이 갈 곳이 없게 되자 집 한 칸을 마련해준 것이 인연이 되어「실로 우연히」시작하게 됐다고 말하는 양로사업도 불우 노인들을 못본 채 할 수 없었던 그의 인간미가 직접적인 동기가 됐을 것이라는게 중론이기도 하다.
노인들과 어울려 장기ㆍ바둑으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가끔 있으나 별다른 취미는 없다고. 내놓을 만한 취미가 없기에 틈만 나면 양로원 농장을 둘러보며 깊은 명상에 잠기곤 한다.
농장을 한 바퀴 돌다 보면 하루에 평균 20리씩은 족히 걷게 된다는데 이것이 어쩌면 고희를 3년 앞둔 고령에도 노익장을 자랑하는, 서 대주교의 건강 유지 비결인 것 같다고 측근에서 귀띔한다.
담배는 하루 1갑 정도로 약간 즐기는 편이지만 애주가로 알려진 소문과는 달리 반주로 배갈 한 잔씩을 드는 정도.
보다 발전한 한국 교회, 그리고 보다 잘 사는 조국을 보게 될 날이 하루 빨리 오길 바랄 뿐이라고 말하는 서정길 대주교-. 이는 어쩌면 평소 지극히도 겨레와 교회를 사랑하며 쉼없이 기도하면서 정중동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노목자의 유일한 소망일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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