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호남지방의 남부지역을 관할하고 있는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는 밀려드는 방문객들과 산적한 업무 처리로 정신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교구 일 외에도 윤 대주교가 맡고 있는 직책만도 주교회의 의장, 주교회의 상임위원회 의장, 동교구 경계조성위원회 원장 동성직자 양성위원회 의장, 동해외교포 사목담당 대건신학대학 재단이사장 등등 거의 열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 정도.
이 엄청난 업무 처리를 위해 1주일에 한 번 정도씩은 서울길을 오르내려야만 한다.
윤 대주교는 상경하는 경우 외에는 광주시 학동 소재 까리따스 수녀원에서 기거하고 있다. 구교구청을 매각한 후 광주 시내 최중심부 충장로에 건립한 가톨릭센타로 교구청을 옮길 때 그 안에 교구장 집무실에 붙여 침실까지 마련했으나 도회의 소음으로 도저히 숙소로는 마땅치 않아 수녀원으로 처소를 정했다.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하면 7시에 미사를 드린 후 7시30분에 빵이나 라면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윤 대주교는 오래 전부터 양식이나 라면을 즐기는 편인데 이는 면류를 좋아하는 평안도 사람 특유의 기질 때문인지도 모른다.
9시 정각 교구청에 등청하면 오전에는 사목국장 관리국장 신부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고 각계로부터 찾아오는 방문객을 맞으며 틈나는 대로 해외로 보낼 서신을 정리한다.
평신도 지도자에서부터 성직자 그리고 이취임 인사차 방문하는 기관장 등 실로 다양한 내방객들을 맞다보면 지칠 대로 지쳐 점심식사 후에는 집무실 옆 침실에서 약 30분 정도 휴식을 취한다.
교구청이 시내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사제들이나 지도층 인사들이 오가는 길에 들르는 수가 많은데 이때 윤 대주교는 이들과 점심을 같이 들면서 상호 부담 없는 대화를 즐긴다.
이들 내방객들과의 의견 교환은 매주 월요일 오전 교구 업무 전반에 걸친 공식 브리핑과 함께 윤 대주교가 사목 방향을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단다. 어려운 여건하에서 교구의 경제적 자립을 부르짖으며 동분서주하다 쓰러져간 고 한공렬 대주교의 뒤를 이어 광주대교구 제7대 교구장에 부임한 윤 대주교의 최대의 관심사는 역시 교구의 완전한 경제적 자립. 대부분의 본당들이 농어촌 지역에 산재해 있어 자립은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지만 틈나는 대로 이에 대한 대책을 숙의하고 평신도들을 격려한 결과 요즈음은 사도회를 중심으로 서서히 협조 기운이 일고 있어 완전 자립의 날도 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농어촌 본당이 많고 특히 서남해 군소 도서지방에 성당들이 흩어져 있는데다가 교통이 극히 불편한 점 등 광주대교구가 안고 있는 모든 취약점들은 곧 윤 대주교의 사목상의 어려움으로 등장한다. 교구 내 49개 본당을 한 번 순시하려면 줄잡아 1년을 잡아야 되는 형편. 뜻 아닌 태풍이나 홍수로 길이 막혀 크게 곤욕을 치룬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윤 대주교는 이러한 모든 악조건을 무릅쓰고 낙도의 공소까지 적어도 1년에 한 번 정도씩은 찾아 가난하고 의로운 신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업무 처리에도 아무 탈 없이 버틸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은 윤 대주교의 큰 자랑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즈음은 52세의 나이도 나이지만 몸을 너무 혹사한다는 주위의 충고를 받아들여 바쁜 틈을 쪼개어 골프로 건강 유지에 신경을 쓰고 있다.
아일랜드 신부들의 권유로 시작한 골프는 핸디 30의 실력. 솜씨를 기르기보다 건강 유지가 주목적이기에「핸디」에는 별 신경을 안 쓰다 보니 여태 핸디 30의 실력밖에는 안 된다고.
교구청을 정리한 후에는 구장이 없어 평소 즐기던 정구도 손을 놓고 있지만 윤 대주교의 정구 솜씨는 널리 알려져 있다.
역시 평안도 사람답게 술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좀 하는 편』.
담배는 거북선을 즐겨 피우는데 하루 한 갑 정도. 건강을 위해 줄이려고 애쓰지만 회의가 있거나 내방객이라도 많으면 1갑으로는 태부족한 형편이란다.
구교구청을 과감히 정리하고 지난해에 전국 제일 규모의 웅장한 가톨릭센타를 건립하는 등 불타는 정열과 박력으로 교구 일을 밀고 있는 윤 대주교이지만 극히 소극적인 평신도들의 협조에는 못내 마음이 걸리는 눈치이다.『본당 울타리를 넘어 거교회적인 공동체 의식으로 도회지 본당들이 가난한 농어촌 지역을 형제적 사랑으로 보살펴 주려고 나선다면 우리 교구의 숙원인 자립도 쉽게 이룩될 것』이라고 말하는 윤공희 대주교. 윤 대주교의 이러한 집념과 노력 그리고 끈질긴 설득과 기도가 계속되는 한 광주대교구가 안고 있는 본당 재정의 영세성 방인사제의 부족 및 성소 계발의 부진 등 모든 취약점들이 해결될 날도 그렇게 멀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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