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불구도 많습니다. 수족이 부자유스런 사람 이목구비에 이상이 있는 사람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 그런데 이 수많은 불구 중에 활성대단축증이란 불구를 앓고 계시는 분은 아마 드물 것입니다. 활성대단축증, 이건 도대체 어떠한 불구인가?
『저는 이에 시달려왔고 이를 극복했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내 자신이 불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국민학교 일학년 때였습니다』
『자자 조용들 해요. 선생님을 잘 봐야지 조오용』
선생님의 말씀에 어린이들은 모두 조용해졌습니다.
『자 그럼 국어책 오늘 배울 곳 읽을 수 있는 사람』
어린이들은 모두 기세 좋게 네네 하고 손을 들며 떠들석했습니다.
『알았어요. 모두 손을 내려요 김일순』
『네』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읽었습니다.
『바두가 받가 이이와 나하고 노오자』
별안간 어린이들은 폭소를 터트리는 것이었습니다. 또 어느날 산수 시간이었습니다.
『자, 김일순 여기 칠판에 쓴 산수문제를 읽어 보도록 해요』
나는 선생니 말씀에 기운이 쭉 빠졌습니다.
『이 더하기 이는 이』
어린이들은 여전히 웃어댔습니다. 나는 안간힘을 쓰고 발음을 해보려고 애썼습니다.
『이 더하기 이는 이』
『김일순, 왜 일 더하기 일은 이라고 하지 않고 이 더하기 이는 이라고 그러지? 글자를 몰라서 그러나』
『(눈물 글썽) 아뉴』
『아니 근데 왜』
『안 돼유 안 나와유 이 이 이 오짜가유』
『뭐이 오짜가』
『에이이이이오짜가유!』
『오리올짜가』
『이오짜가유!』
나는 울음이 나왔습니다.
『저를 수가』
그 다음날부터 나는 학교 가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나는 못된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선생님이 우리 집을 찾아오셨습니다.
『저 일순이 어머님 울지만 말고 말씀 좀 해 보세요!』
『전생에 죄가 많아서 그런지 떠돌아 댕기다 쟤 아버지를 만났지유』
『음-』
『근데 쟤 성과 쟤 낳구 두 살 때 그만 제 아버지가 툭 죽어버리니 벨수 있겄어유. 정육점 심부름이나 허가믄서, 근근이 입에 풀칠이나 허믄서 살 수 있유!』
『말이 저렇다는 건 미리부터 알았나요』
『아뉴 별루…원채 지가 일에 경황이 읍구유 그리구 애가 말수도 적고 혀서유!』
『알겠어요 그 사정을 모르고 제가 일순이를 구박놓은 결과가 되었군요!』
『가정방문 오기를 잘했습니다. 저 김일순 김일순!』
나는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자, 가까히 와바!』
나는 떨면서 선생님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김일순』
『네!』
『이제야 알겠다. 네가 학교에 나오기 싫어한 이유를, 그리고, 물건 훔치며 방항한 이유를. 그치만 안심해. 앞으로 동무들 앞에서 어려운 질문은 안 할 테니까. 국어시간에도 너에게만은 읽기를 시키지 않고, 그대신 떼어쓰기로 점수를 줄 테니까, 알겠지?』
『네 선생님』
『그러니, 용기를 내요. 학교 꼬박꼬박 나와야 해. 자신을 가지고 우등생이 되어야 한다. 분정국민학교에서 1등 가는 어린이가 돼야 해! 알겠지 약속했다.』
『선생님…』
고마우신 선생님이셨습니다. 나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습니다. 드디어 졸업식날.
선생님의 온정과 격려는 기적적으로 저로 하여금 6년 계속 우등의 영광을 안겨 주셨고 반장에다 전교회장까지 겸할 수 있게 했습니다. 위축을 느끼지 않고 너무도 떳떳하였기에 친구들도 비웃을 염을 못 내었지오. 그러기에 졸업식 날일이 바빠 어머니도 나오지 못했지만 저에게는 너무도 감격스러운 졸업식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도지사 표창!
이런 일로 저는 그 고장 학교에 학생으로 들어가 계속 일등을 유지해 나갔지요! 다만 가슴 아픈 것은 가난한 어머니의 애쓰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계속하여 저는 군에 있는 모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돈이 없으므로 장학금을 타기 위해 성적이 좋아야 했습니다. 뜻한 대로 학비는 면제 받았으나 저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지요. 장래를 위해 돈을 더 벌어야 했습니다.
이윽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농협에 적금한 7만1천 원을 찾았습니다. 7만1천 원 있는 사람들껜 그깐 7만1천 원 아무 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나에겐 7백만 원 만큼이나 소중한 돈이었습니다.
꼬박꼬박 정기예금 하기를 1년, 그리고 년을 예치한 돈이었습니다. 방학 때 하구 토요일 일요일엔 품팔이로 벌은 돈 대한일보 배달한 돈도 수월찮았습니다. 그 돈을 받아들고 어머니는 또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남의 똥지게 져다 나를 적엔 가슴이 아펐었다.』
『아 엄니도 농촌에서 거름 나르는 게 뭐가 챙피허서요』
『챙피한 것두 챙피한 것이지만 몸이 축날까봐서』
『헤헤 그치만 이렇게 넉근하게 실지 않었유. 인자 두고 보세유! 서울 가서두 보기 좋게 취직혀서 어머니 호강시켜 드릴께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저는 가난을 면하고 좀 더 큰 뜻을 펴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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