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섭정에 오른 대원군은 집권 10년 동안 대략 1만 명으로 추산되는(류홍렬 저 한국 천주교회사)「천주학쟁이」를「선참후계」방식으로 처형했다. 대원군은 1866년부터 잔인한 박해자로 변신 그 후 6년간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 박해를 주도함으로써 우리 역사상 가장 길고 처절했던 박해의 주인공으로 악명을 남겼다. 대원군이 주도한 병인박해(1866~1871)의 기록이「致命日記」는 전회에 소개한 己亥日記와 더불어 한국 교회의 2대 치명일기로 분류된다.
마지막 박해였던 병인박해가 끝나고 1886년 한국 수호 조약 체결로 신교 자유를 얻게 되자 교회는 곧 병인 치명자들의 기록에 착수 1859년 조선교구장 뮈델 주교의 이름으로 행적 수집이 가능한 877명의 순교 사실을 정리한 이 치명일기를 발간했다.
그러나 이 「치명일기」는「기해일기」와 여러 면에서 성격이 다른 일기이다.
「기해일기」는 우선 당시 신자들의 손에 엮어진 한국적 체취가 풍기는 열전체의 구체적 기록인 데 비해 치명일기는 이미 치명자들에 대한 구체적 기록을 수집한 선교사들이 순교자 시복에 필요한 증언을 보강하기 위해 순교자를 중심으로 간단한 인적 사항과 순교 사실만을 기록했을 뿐이다. 「치명일기」는 증언 수집을 위한 순교자 명단이라고도 볼 수 있다.
뮈뗄 주교는 치명일기를 전국 본당과 공소에 배부하면서『기록된 사람의 목기와 치명한 때와 장소가 바로 되지 못했는지 의심이 많으니 자세히아는 자 있으면 사실을 알리라고 명했다.
이 명에 따라 기록된 순교자의 순교 사실을 증언하는 증언이 한국에서 보고됐고 보강된 증언을 토대로 그 중 26명에 대한 국내 시복 재판이 진행, 60여년 만인 1968년 10월 6일「로마」에서 2명이 탈락된 24명이 복자로 선포되었다.
「치명일기」가 나간 후 전국에서 들어온 증언록 가운데 삼촌의 치명 사실에 대한 한 조카의 증언록은『치명하신 칠육육(기록 번호) 정원지는 죄인의 삼촌이옵는데 전라도 전주 성지동네 살 때에 잡히신 일을 친히 보았고 칠육칠 조요셉과 칠육일 조베드루도 전주 성지동네에서 잡히신 일은 친히 보았고 성지동네 사는 육서방이 보고 말하기를 칼을 받아 치명하였다 하더이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책의 이름은「치명일기」로 되어 있으나 다른 치명일기와 구별하기 위해「병인치명일기」로도 불러오고 있다.
이때 들어온 증언록(수미상)들은 서울 명동 주교관 서고에 방치돼 오다 몇 년 전 교회사가 최석우 신부가 1백여 통을 발견 소장하고 있는데 최 신부는『일기와 증언록을 묶어 정리하면 내용도 보완되고 특히 지방 순교자들의 행적을 밝히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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