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가 된 지 어언간 30년이 된다. 그러니까 해방 되던 해에 신부가 된 것이다. 대동아전쟁 말기에 접어들어 악랄한 군국주의 일본의 단말마적인 발악으로 공습의 포화로 인한 피해를 줄인다는 명복으로 소위 소개(疏開)라는 것을 실시하여 해방 후에 대구에도 엉성한 시가지 그대로였다.
여기 시민들이 되돌아와서 살기 시작했다. 이런 집에서 병자성사를 청하는 것이다. 풋나기 젊은 신부가 쫓아간다. 그야말로 대문도 창문도 없는길거리가 환히 내다보이는 집이다. 거기서 밥상에 흰 보를 깔고 촛불 두 개를 켜 놓고 중백의와 영대를 입고 병자성사를 집전한다. 구경꾼들이 모여온다. 마치 무당이 굿을 하는 광경이다. 조금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시끄러운 굿은 아니다. 고요히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대행하는 것이다.
병고도 하나의 악이다. 이 악이 우리의 몸이나 마음에 와서 생명을 위협할 때 그 악과 투쟁하고 몰아내고 치유시켜야 한다. 이러한 육체적 혹 정신적 승리뿐 아니라 영적 승리를 거두기 위해 그리스도가 병자성사 가운데 오신 것이다. 우리에게 새로이 악에 대한 당신 승리를 심기 위해서이다. 이 성사로 우리의 형제들과 하느님께 대한 봉사를 위해 건강이 회복되기도 하고 하늘나라로 걸어가기도 하는 빠스카의 신비가 우리에게 이행되도록 우리의 생사를 생명이시요 죽음을 이기신 그분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보람을 느끼고 구경꾼을 해치면서 본당으로 돌아오곤 했다.
또 혼란한 틈을 타서 해방 직후 호열자라는 무서운 병이 들어왔다. 이 병에 걸리면 죽는 일뿐이다. 전염도 무섭다. 대구가 특히 심했다. 이런 병자 집에도 간다. 역시 풋나기 신부라 두려웠다. 전염성이 있을 때의 도유(塗油)는 손으로 직접 하지 않고 붓 같은 것으로 해도 된다고 신학교에서 배웠다. 그래서 붓으로 도유했다.
많은 호열자 병자에게 성사를 집전하는 중 두려움도 가시고 그 후부터는 대담하게 손으로 균이 핑핑 쏟아져 나오는 입에 예사로 도유하게 된다.
두려움은 오히려 그 가정에 더했다. 그래서 성사 집전 후에는 소독수로 손을 씻으라 야단이다. 그러나 전염되지 않았기에 오늘까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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