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물려가며 살던 집과 피땀을 흘리며 정성을 다해 가꾸어온 농토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리는「물난리」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에게는 가장 무섭고도 극심한 고통일 것이다.
당시 내가 전교수녀로 있던 지방은 높은 제방으로 둘러싸인 수원지가 있어서 아름다움과 조용함을 만끽할 수 있는 평화스러운 마을이었다.
어느 해 여름 장마철에 접어들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며칠을 두고 폭우가 쏟아지더니 높고 견고하게만 보이던 제방 둑이 무너지고야 말았다. 제방 둑을 무너뜨린 사나운 물결은 그 주변에 모여 살던 가난한 동네를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한 순간의 여유도 없이 쏟아져 내린 빗속에서『설마 세방이 무너지기야 하랴』는 막연한 불안과 기대 속에 속수무책으로 있던 주민들은 집과 농토 가재도구 등과 함께 흙탕물 속에 잠겨버렸다.
앞을 분간할 수 없이 퍼붓는 폭우 속에서 가족을 부르는 고함 소리 살려 달라고 애타게 울부짖는 소리 등이 뒤범벅이 된 수재 현장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마을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허리가 물에 잠긴 채 무심히 서 있는 전선들과 가지들이 모두 부러지거나 잘려나가 흉한 모습으로 엉성하게서 있는 가로수뿐이었다. 물과 함께 밀어닥친 흙더미에 깔려 이미 숨이 끊어져 버린 사람、흙 속에서 팔을 위로 든 채 목만 내밀고 구조되기를 바라는 사람, 그 사이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어린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처절한 울음소리 등은 정말 지금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처참한 상황이었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도 모두 정신없이 우왕좌왕할 뿐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을 정신없이 뛰어가서 두 눈으로 확인한 내 입에서는『하느님 맙소사』『하느님도 무심하시지』란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나를 바라보는 수재민들이 모두 나를 원망하는 것 같았고 모든 책임은 내게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근처 국민학교에 수용된 수재민들 중 5세대인 교우 가정은 다행히 인명 피해는 입지 않았다. 우선 본당으로 돌아온 나는 각 구역 반장님들의 손을 빌려 본당 내 교우들에게 구호품을 모으도록 연락했다. 교구장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구호활동은 예상보다 순조롭게 진행됐다. 식료품 의료품 등이 계속 들어왔고 현금은 모아지는 대로 빵을 마련했다.
동회에서 조사한 수재민 가정을 찾아다니며 적절한 분량대로 현금 밀가루 쌀ㆍ라면 등 가장 급한 식생활 문제부터 해결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매우 곤란한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동회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수재민이 있었던 것이었다. 남의 셋방살이를 하는 형편이라 자꾸 이사를 다니기 때문에 동회에 주거 등록을 못한 수재민들과 수재를 안 당했지만 가난한 주민들 중에 진짜 수재민을 가려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동회에서 배급작업이 끝나고 돌아와보면 몇십 명씩 본당에 찾아와서는 우리도 수재민이니 도와 달라고 아우성치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누구를 막론하고 도와주고 싶었지만 극히 한정된 구호금과 구호 물품을 가지고 무한하기만 한 부족감을 다 채워주기란 지극히 힘든 일인 것이었다.
수재를 당하지 않고도 수재민이라고 고집하는 그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수재민이 섞여 있을 가능성 때문에 아니、설령 수재민이 아니더라도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가난 때문에 구호품을 나누어주는 사람의 마음은 표현할 수 없이 아프기만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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