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미래
신의 미래라고 해서 미래의 신이 어떻게 될 것이다 하는 것을 측정하려는 것이 아니고 신에 대한 인간의 인식 수용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려는 것이다.
신의 문제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다. 현대는 무신론의 사상으로 충만돼 있으며 무신론은 인간 역사와 함께 탄생해서 함께 존속해온 사상이기는 하나 이것이 체계화되고 구체화 된 것은 데카르트 이후로 추측된다.
정의채 신부는「신학의 미래상」이라는 주제하의 좌담회(가톨릭대학보 77년 6월 18일자)에서 무신론은 초월사상을 배제하고 內在 원리로 만족하려는 데카르트부터 시작한다고 한다.『데카르트는 인간 사유를 객관적이며 초월적인 방식에서「Cogito ergo Sum」(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라는 명제로 內在에로 전환시켰다. 이런 내재사상은 급기야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초월적 신의 불가지 무관심 내지 신부재 사상에로 발전하여갔다』여기에서 시작된 사상의 흐름은 스피노자 헤겔 포이에르바하 맑스 니이체 사르트르 등으로 발전하여 무신론이 당연한 것처럼 되고 말았다.
내재원리만을 따를 때 무신론은 당연한 것이며 무신론도 이제는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원칙이 된 것이다.
그리고 과학의 발전도 바로 이 내재원리에 의해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과학은 신의 불필요성을 증명해 내고 만 것이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와서 과학의 발전은 오히려 그와 반대현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실 지식의 발전은 우주의 광대함과 자연법칙의 복잡 미묘함을 더 잘 제시하여 인간 지성을 경탄케 하고 있다. 곤충에서부터 인간을 통해 우주 전체에 이르기까지 그 조화와 조직은 우연성을 배격하고 오히려 위대한 지성을 전제케 하고 있다.
과학과 지식이 더 발달하면 할수록 비례적으로 인간 지성은 더 경탄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 그래서 결국 과학의 발달은 더욱 더 초월원리를 강조해야 할 필요에 몰리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이 최대한으로 발전하면 그만큼 인간은 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신의 존재의 필요성만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으로서는 만족할 수 없다.
문제는 개념의 신보다 인격의 신과 대면하는 것이 인간에게 더 큰 문제로 남게 될 것이다.
■종교의 미래
로스토우는「고도 대중소비시대」라는 책자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제1대는 돈을 구했다. 제2대는 부자집에 태어났기 때문에 사회적 공공적 지위를 구하였다. 제3대는 돈과 훌륭한 가문에 태어났기 때문에 음악가가 될 길을 택하였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은 구하기를 그치지 못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은 여가를 더 구하고 있다는 것이고 재물ㆍ명예 다음에는 예술과 종교 즉「to have」가 충족되면「to be」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결국 과학 문명이 최대한으로 발달하면 대중 여가시대가 오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여가란 여분으로 남는 한가한 시간도 아니고 노동하고 나머지의 시간도 아니다. 여가는 한가와 여백과는 차이가 있다. 여가는 창조와 발견의 세계를 말하며 生이 충만한 시간을 가르키고 있다. 참다운 生은 창조와 발견 속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가는 인생 전체가 누려야 할 시간이다. 인간은 이 창조와 발견의 능력을 과학 예술 종교 안에서 발휘한다.
옛날에는 인간은 창조와 발견의 능력을 개별적으로 총동원하여 생활해갔었다.
인간은 석기나 토기를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고 그것을 도구로 하여 수렵이나 농경을 행하고 흑은 신전을 건축하고 동굴에 벽화를 조각하기도 했다. 그는 생산자임과 동시에 과학자이며 예술가이며 종교가이며 기술자였었다. 그러나 장기간의 분업화의 과정을 통해서 인간은 그 능력의 일면만을 추구하게 되고 또 그 일면만이 비대하여 인간의 전체성이 손상되어왔다. 과학만이 중요하고 예술과 종교는 소홀시 되고 만 것이다.
그뿐 아니라 분업화와 전문화 과정에서 개별적 창조의 능력이 발휘될 수 없게 되었으며 인간 자신이 기계의 한 부분품처럼 되어 그에게는 창조와 발견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을 비인간화 과정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탈피하기 위한 인간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또 필연코 성취되기 마련이다. 새로운 여가시대라면 인간은 그 전체성을 발휘하여 예술과 종교의 본능도 함께 발전시키고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지금 현재 벌써 여러 고도로 개발된 국가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여가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여가시대에 올바로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스피드ㆍ성ㆍ도박ㆍ범죄ㆍ폭력ㆍ알코올ㆍ마약 등등의 문제는 실패의 예들인 것이다.
예술의 세계와 과학의 세계와 종교의 세계는 그 성질을 서로 달리하고 있다.
인간은 이 세 가지의 세계에서 동시에 활동할 수 있을 때 인간화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과학의 세계에 인간을 국한시킨다면 인간은 질식하고 말 것이며 예술의 세계에 인간을 국한시킨다면 육신 생명의 존속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고 종교의 세계는 그것만을 추구한다면 인간을 실질적으로 퇴보하게 할 것이다.
이 세계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되어야 한다. 과학은 마술사 견습생과 같은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제동을 거는 힘이며 과학이 찾는 것은 인간이 무엇이냐에 비해 종교는 나는 누구냐를 추구하고 있다.「Identy Crisis」를 겪고 있는 이 시대에 종교의 발달이 더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는 것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의 미래
교회는 신의 영역과 종교의 영역을 현실적으로 구체화하고 실체화하는 제도이다.
미래의 교회는 현재보다 더 많은 작업량을 받게 될 것 같다.
인류의 존속을 보장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교회라고 생각된다.
교회의 미래에 대해서 적어도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첫째는 교회가 인류사회 내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 하는 것이고、둘째는 교회 자체가 어떻게 변모되어 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먼저 교회 자체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면 여러 가지 공상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심리학이 최고도로 발달되어 고백성사를 볼 때 고백할 필요없이 내심을 환히 들어볼 수 있도록 해준다든지 DigitalSystem으로 표기한다든지 교황의 미사에 직접 참여하여 영성체 하고 돌아와서 자기 사무실에 출근한다든지 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교회의 기본 신앙이 바뀌고 기본제도가 바뀔 것인가? 여기에는 틀림없이 아무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그 표현 방법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과학이 발달하면 그 기구들로서 사목을 더 용이하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둘째로 교회가 인류사회 내에서 가질 역할은 인간화 작업에 선구자 역을 해야 할 것이다.
자유 평화 일치는 교회에서 모색해주어야 할 영원한 가치들이 아니겠는가.
■결론
교회의 미래상을 연구해 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우리 모두가 교회의 일원으로서 교회를 더 사랑하고 교회에 더 충실하겠다는 욕망을 더크게 가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며 그 외에 다른 목적으로 교회의 미래상을 연구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보여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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