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님은 어떤 일을 합니까?』주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이렇게 묻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럴 땐『사람 만나고 회의하고 편지를 쓴다』고 대답한다는 인천교구장, 나길모 주교. 미국 메리놀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지구의 반대쪽 낯선 이국땅을 밟은 지도 어언 22년. 한국으로 오기 전에 예일대학교에서 한국어 공부를 했기 때문인지 유창한 우리말이 아주 자연스럽다.
나 주교의 일과는 오전 6시 아침기도로 시작되고, 조반을 든 후에는 교회 기관들과 교구 재단의 현황을 거의 날마다 보고 받은 등 찾아오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자들을 접견한다. 그리고 강의나 강론 준비를 하고 틈 나는 대로 외국의 수많은 은인들에게 편지를 쓴다. 강의는 원고 준비를 하지만 강론은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줄거리만 구상하여 원고 없이 한단다.
강론 때 원고를 낭독(?)했더니『신부도 기억 못하는 내용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겠는가?』고 반문하는 신자가 있더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웃었다. 나 주교는「복음강론」이란 본연의 주교 직분이「관리ㆍ행정」으로 일탈돼온 점이 못마땅한 듯『주교는 사도 베드로처럼 기도와 강론을 해야지, 교구장으로 사무실에 앉아 사무를 보는 것은 좋지 않아요. 사무는 다른 분들에게 맡기고 기도와 강론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재삼 강조했다.
이어 나 주교는 요즘 전국 및 교구 규모의 각종 회의가 부쩍 많아진 사실을 지적했다. 특히 나 주교는 주교회의의 실무를 담당하는 총무요 상임위원이다. 그래서 지난달에 있었던 극동아시아 주교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서울과 인천 사이를 수 차례 오르내렸다.
그 밖에 주교회의에서 맡은 성직자양성위원ㆍ일치위원장ㆍ정의평화위원회 총재단ㆍ신앙교리위원 등 일들 때문에 회의에 쫓기고 회의로 지새기가 일쑤다.
『주교회의는 과거에 비해 우선 회원이 많이 늘었고 모이는 회수가 많아졌으며 솔직한 얘기를 많이 하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말하는 나 주교는 흔히 주교들의 의견이 일치가 안 된다고 하지만『다른 견해가 없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면서 별로 문제시하지 않는 눈치였다. 청소년 문제에 특별히 관심이 많다고 알려진 나 주교는 교회와 청년들 사이가 멀어져가는 듯한 현상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극동아시아 주교회의가「청소년 교리교육」을 주제로 한 것이 아주 좋았고, 회의를 공개한 것 역시 매우 좋았다고 평가했다.
나 주교는 이번 회의를 경험 삼아 한국 주교회의도 인사문제를 다루지 않을 때는 공개하는 것이 보다 알차고 보다 좋은 회의가 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평신자의 역할에 대해 나 주교는 공의회 정신대로 평신자가 교회의「지도(指導)」에 들어와서「복음화」사업에 직접 관여해야 된다고 강조한 후『그러나 말하기는 쉽고…』라는 말마디를 달았다.
주교로 서품된 후 15년간 매년 2월부터 7월까지의 주말에는 견진성사를 베풀어왔다는 나 주교는 서해의 섬(島) 본당을 1년에 한 번씩 방문한다면서『그때는 오히려 휴가가 돼요. 사무 보는 일 없고』라는 말을 덧붙여「사무」에 어지간히 넌더리가 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교구 내에 냉담자와 행방불명자가 너무 많아지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교구 신부들이 젊고 일을 많이 하여 신자들이 자꾸 늘어나 본당을 신설하는 일도 쉽지가 않단다.
인천교구는 10월 1일자로 송현동본당이 신설됐고 이달 말에는 송림4동 성당을 축성한다. 그리고 시노트 신부는 미국 메리놀본부에서 정의평화위원회 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기억에 남는 일을 물었더니 나 주교는 청주교구에서 신부로 일하던 시절이라면서 잠시 회상에 잠기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의 젊음과 사도적 정열이 잊혀지지 않는 모양이다.
메리놀신학대학 동창신부는 나 주교를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강한「일꾼」이며「항상 바쁜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래서 7년간 청주교구에서 일할 당시 파 야고보 주교는 어렵고 책임이 무거운 일은 모두 오늘의 나 주교인 윌리엄 맥노우턴 신부에게 맡겼단다.
나 주교는 스포츠에도 능해 신학생 땐 핸드볼과 야구를 잘 했고 소프트볼로 야구를 할 때는 홈런을 곧잘 때렸다는 얘기로 미루어 지금은 골프 같은 운동을 함직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는 것 같았다.
측근 신부들은 나 주교의 소박함과 검소한 생활을 높이 샀다. 침실은 신학생들의 침실과 별로 다를 바 없고 자동차를 몸소 운전하기도 하고 서울 인천간은 지하철을 서울 CCK에서 메리놀본부까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기도 한단다.
한국 음식에 대해 나 주교는 심하게 매운 것은 아직 못 먹지만「겨울 김치」는 아주 좋아하고 생선회는 작년부터 즐기게 됐다면서『보신탕에 대해 호기심이 많다』고 말하며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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