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겐 신념이 있었고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 용기는 하천선에서 수중 침투하는 간첩 잡은 임무에서 나타났죠.
『앗 저기 이상한 물체가 움직이고 있구나. 앗 간첩인지도 몰라. 근데 이를 어쩌지. 이상한 물체가 나타나면「벼락」이라고 전화로 알려야 되겠는데「벼락」은 내 음성으로「벼약」으로밖에는 발음이 안 되지 않나! 더구나 상황이「벼락」만으론 안 돼! 수중 침투이므로 적이 더 있을지도 모르니 더 신중히 기다려야 하는 건데 과연 내 이 언어 장애로 이런 말을 다 할 수 있을까. 에이 모르겠다!』
나는 전화에다 대고 낮게 말했습니다.
『3초소 여기는 삼초소 공비 비슷한 것이 나타났습니다요』
『뭐야 그 따위 보고가 어딨느냐?』
저쪽에서 응답이 왔습니다.
『자우간 여긴 3초소 공비 비슷해유』
『알았다. 계속 감시하라』
『예 소대장님』
드디어 기관총 소리가 요란히 울리고 간첩은 우리 손에 체포되었습니다.
『하하하하』
『하하 이무튼 됐다. 김일순 일병. 네 덕분에 공비 한 놈 잡았지 뭐냐』
전우들은 모두 기뻐해 주었습니다.
『두고 봐, 내 너를 모범 용사로 추천하고 특별 휴가와 공비 잡은 보상금도 타게 해 줄 테니까』
나는 군에서의 답답한 심정을 누군가에게 호소하고 싶어졌습니다. 나는 무턱대고 편지를 썼습니다.
『미지의 향숙양에게…저는 향숙양을 본 적도 없고 음성을 들어본 적도 없어요. 우연한 기회에 모 월간잡지 투고란에서 향숙양의 글을 보고 서로 뜻하는 바가 같기에 대화를 나눠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어 보자는 뜻에서 당돌하게 저의 뜻을 밝히오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군에 들어오기 전 농촌 출신의 고학생으로 고등학교까지 마쳤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찰나 군에 들어와 이렇다할 근거는 없으나 앞으로의 계획에 밝은 웃음으로 오늘도 복무하고 있습니다. 제대 후의 계획을 위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모으기에 메모장이 이미 다섯 권째이고 저금도 봉급의 절반을 꼬박꼬박 하고 있지요. 앞으로 저의 계획이 어떻게 될지 모르나 저의 이러한 노력에 앞으로 많은 지도와 격려의 말씀 주시길 바랍니다』
얼마 후 향숙씨에게서 답장이 왔습니다.
『사랑하는 김일순 선생님께! 주신 글월 기쁘게 읽고 눈물이 흐를 만큼 가슴이 벅차서 몇 번이나 또 읽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건강미가 넘쳐 흐르는 군인 아저씨에게서 편지를 받고 보니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릴 길 없는 채로 한없이 고마웁고 가슴 벅찹니다. 이렇게 회답이 늦은 것은 저의 어머니 병환 때문이었답니다! 저의 어머니는 노환이시라 암만 해도 올해를 넘기지 못하실 것 같다 하며 돌아가시기 전 저의 결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 하시면서『네가 올해 나이 몇이냐』핀잔하는 찰라에 편지가 날아들었으니 이것 또한 인연이 아닐런지요! 그래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씀드립니다.
김 병장님의 집 주소와 가족 관계를 적어 사진 한 장과 함께 보내 주시면 많은 참고가 되겠습니다. 저의 못생긴 얼굴이나마 사진 한 장 보내옵고 그럼 김 병장님의 무운장구를 빌면서 오늘 밤은 이만 안녕!』
이러한 향숙양의 편지는 저의 인생에 비로소 꿀 같은 봄이 찾아온 셈이라 할까! 이윽고 저는 제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향숙양을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지금 저는 산양을 기르며 양송이 재배를 하고 있습니다. 저녁을 먹으라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보! 여보! 어디 계세요!』
『오 여계 여기에』
나는 아직 향숙이가 내 아내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여보! 무슨 소리를 그리 하세요. 이 세상에서 당신 같이 똑똑한 분이 어디 있다구요! 당신 같이 굳건한 분이 어디 있다구요. 그리구 이 농촌에선 부자예요. 산양이 이십 마리 돼지가 열 마리 돼지 새끼 열다섯 마리 그리고 삼십 평짜리 양송이 모단이 있구 그뿐인가요 오천 평이에요. 당신이 제대해서 일궈 놓은 임야가 오천 평.』
『여보』
『쉬운 일인 줄 아세요? 해낼 수 있는 일인 줄 아세요! 당신은 수모를 참아 나갔구 역경을 이기신 분이에요. 그런 당신을 남편으로 모신 저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지 뭐겠어요!』
『여보』
『전 이미 알았다구요. 당신 제대하실 때 그 고된 복무 중에도 저금 통장을 들고 나서서 가난한 농군학교의 뜻을 살려 묵묵히 일터에 나서는 그 모습을 보고 알아요. 아 나는 장래의 행복을 약속 받았구나 하고. 얼마나 가슴이 벅찼다구요.』
고마웠습니다. 참말 고마웠습니다! 나에게도 이런 아름다운 아내가 있고 이런 농토가 있다고 생각하니 그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자기 스스로를 고독의 독방에 감금하고 저마다의 슬픈 비밀의 자물쇠를 잠그고 사는 신체가 부자유스런 동지들에게 이 기회에 호소하고 싶습니다. 슬퍼 마십시오. 위축 마세요. 용기를 내어 뛰쳐나오십시오. 저의 경우를 보세요. 저를… 우리는 결코 버려진 몸이 아닙니다! 스스로 돕는 자에게 이웃이 있고 하느님이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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