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친구 신부의 은경축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엘 내려갔었다. 이 기회에 몇 개 본당으로부터 순교자에 대한 얘기를 해 달라는 청을 받게 되어 예정보다 며칠을 더 묵게 되었다. 때가 복자성월이고 보면 별로 이상하게 생각될 일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간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와 교우들에게 있어서 우리 순교 복자들에 대한 신심이 시성운동으로 집중되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관심이나 질의는『시성운동이 어디까지 왔는가』『김대건 신부만을 시성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기적은 몇 개가 필요한가』등등 매우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만 해도 시성운동이 서울 한 구석 몇몇 성직자와 평신도 동지들의 모임인 양 느껴지던 것이 신문의 보도로 점차 전국적으로 번져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신속하게 또 광범하게 번질 줄은 정말 미처 몰랐다. 바야흐로 시성운동은 오늘의 한국 교회가 맞은 시대의 징표인 양 자발적인 운동으로 전국 방방곡곡에 메아리쳐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성운동을 효율적으로 전개시키려면 이에 따른 구체적이고 기초적인 지식과 아울러 행동의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우선 시성과 시복의 대상자를 선정함에 있어서 전국 교회의 여론이 통일되어야 할 것이다. 누가 시성의 대상자가 될 수 있는가. 성인이 되려면 먼저 복자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복자가 아니고선 시성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또한 시성에 앞서 요구되는 기적도 반드시 시복 이후에 얻어진 기적이라야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에게는 1백3의의 복자가 있다. 그 중 79위는 1925년에 복자가 되었고 나머지 24위는 1968년에 복자가 되었다. 79위는 기해(1839) 및 병오(1846)박해 때 순교하신 분들이고 24위는 모두 병인박해(1866) 때 순교하신 분들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시성의 대상은 복자를 전제로 하므로 우리의 순교복자 103위는 모두가 금번 시성 청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교회법상 103위 복자가 똑같이 시성 대상에 오를 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중에는 몇몇 뛰어난 복자들을 특히 김대건 신부만을 대상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많은 위인들 가운데서도 특히 사숙하고 싶은 인물이 있는 것이고 복자의 경우에도 예외가 될 수 없다면 우리 복자들 중에서도 어떤 특정 인물을 선택하려는 것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고 또한 선택해서 안 된다는 법도 없다. 그러나 다음의 몇 가지 이유에서어떠한 복자도 금번 시성 대상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성인은 많을수록 좋다고 하면 그야말로 췌언일 것이다. 순교자의 경우가 특히 그러할 것인데 목숨을 바쳐가며 차라리 사람에게보다는 하느님께 끝까지 순종한 무리가 많았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이웃 일본에는 25명의 성인이 있다. 만일 우리의 소망대로 복자 전원의 시성이 성취된다면 적어도 우리는 성인의 수에 있어서만은 일본 교회를 능가하게 될 것이 아닌가.
시복의 경우에는 더러 탈락되는 수도 있지만 시성의 경우에는 복자들의 이름으로 전구하여 얻은 기적만 인정되면 되기 때문에 탈락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1964년 공의회 중 아프리카 우간다의 22명의 복자가 하나도 빠짐 없이 성인으로 선포된 사실은 하나의 좋은 보기일 것이다. 김대건 신부의 이름으로 얻어질 수 있었던 기적이 다른 복자들의 이름이 첨가되었다 하여 거절될 것인가.
가령 김 신부의 덕택으로 모든 복자가 한 몫에 성인이 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횡재스러운 일이며 그로 인하여 김 신부의 영예가 결코 손상될 리는 없을 것이다. 시복 청원 명단을 교황청에 제출함에 있어서도 동일한 원칙을 주장하고 싶다. 즉 우리에게 알려진 순교자라면 한 명도 빠뜨리지 말고 시복 대상에 포함시키자는 것이다. 복자가 되고 안 되고는「로마」가 판단할 일이고 설령 탈락하는 순교자가 많다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얻게 될 부수적 성과를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순교자의 이름과 집안과 행적이 많이 수집됨으로써 그들의 영광스러운 전기가 우리 후손들에게 길이 전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차제에 무수한 무명의 순교자의 이름을 하나라도 더 밝혀내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고귀한 명예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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