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회 이후 쇄신의 물결은 과도기적인 병폐가 없지 않은 것 같다. 특히 농촌신자 대중을 지도함에 있어서는 쇄신의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많은 반성과 인내로서만 지도되어야 하므로 과중한 정신적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지 복고주의(復古主義)와 급진주의(急進主義) 즉 신농씨시대의 농사법을 고집하는「완고성」과 속이 자라도록 뿌리를 뽑아 올리는「조급성」의 극단적인 사목 방침을 가끔 볼 수 있다. 양편 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으로 새 좌표를 설정해야 할 것이다.
그 중 한 예로 아무 대안도 없이 판공찰고 제도가 없어졌거나 옛 방식의 문답식 찰고를 계속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일 년에 한두 차례 교우들의 신심상태와 교리 지식을 점검하는 것은 번거롭기는 하나 개별지도와 그 가족사항을 명확히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어야 할 것이다.
사병의 비위나 맞추는 지휘관을 무능력자라고 한다. 시대의 고속화로 교우 대중이 찰고를 꺼린다는 통례에 너무 성급히 동조하는 것은 아닐까?뚜렷한대안없이 찰고제도를 없앤 곳은 재고가 있어야 할것같다.찰고방식의 묘를 살린다면 교우들도 기쁘게 응할 것이다.
15년 전 얘기-. 찰고에 얽힌 지난 추억담들 하나 얘기해 보자. 성탄절이 가까와 찰고 때가 되면 교우들은 긴장하게 되고 사무실은 시장을 방불케 한다.
신부님 사무실로 찰고 받으러 들어가는 사람, 찰고필증을 들고 나오는 사람, 함께 들어갈 사람을 찾고 있는 사람, 웅성웅성 문답을 외는 사람들.
찰고실 풍경은 더욱 볼 만하다. 표정도 가지가지, 태도도 구구각색.『엿을 잡수시면 엿처럼 척 붙는다』고 살뜰한 며느리가 들려드린 엿을 들고 덜덜 떨며 웅얼웅얼거리시는 할머니도 있고, 차례가 되어 질문을 받게 되면 저고리 앞섶이 달달 떨리도록 긴장하는 아주머니들. 태연한 척 표정을 바꾸지 않다가도 막상 질문을 받으면 마른 침을 삼키며 더듬거리는 남정네들. 옆 사람이 막힐 때마다 소근소근 일러주다 꾸중 듣는 사람. 멍청해서 엉뚱한 답을 대며 폭소를 잦게 하는 사람.
그러나 긴장된 분위기 속에도 찰고 합격의 작은 성취 소망이 있어서 좋다.
두 번 세 번 어떤 분은 무려 여덟 번까지도 새로 찰고 받은 일이 있었다. 제노베파 할머니! 바로 이분이 찰고 여덟 번 낙방에 얽힌 사연으로「통회 할머니」란 별명을 얻으신 분이시다.
사연인즉 예비신자 3년 만에 간신이 세례 받은 이 할머니는 주모경 이외는 단 한 구절을 문답 조목도 외우실 수 없었다.
그래서 찰고에 떨어질 것은 뻔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신부님의 입장에서는 성사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의 기초적 지식이 있는지 없는지 알기 위해 표현된 지식을 중히 여기셨다. 드디어 여덟 번째 찰고 때『통회는 무엇이뇨?』『………』그 이상 별 도리가 없는 줄 아시고 맞은편 벽에 걸려 있는 십자고상을 가르키며『할머니, 저분이 누구시며 왜 저렇게 달려 계십니까?』이 질문에 그 할머니 일어나셔서 십자가 밑에 서서 위를 보시며『아이구우 불쌍하신 예수님! 내 탓입니다. 내 탓입니다』가슴을 치시며 그만 대성통곡을 하신다. 여덟 번 낙방이 가져다 준 서러움이 겹쳐 격한 감정이 눈물 홍수를 싣고 왔다. 당황하고 감격하신 신부님『예, 예, 할머니 그만 그만하면 넉넉합니다』합격표를 주시며 두 손을 잡고 특상으로 묵주까지 선사하셨다.
이렇게 해서 어느 사이「통회 할머니」란 별명이 생겼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 극적인 할머니의 태도가 변함 없는 영상으로 내게 와 있다. 정겹게 추억되는 할머니! 날 구석으로 불러내어 치마 속에서 꺼내어 쥐어주시던 때 묻은 삼베 보자기에 싸여진 메밀묵 한 덩어리!「사랑」이란 개념을 장설로 늘어놓은 천박성 이상의 것을 그분은 분명히 알고 계셨다.
「사랑」이란 서술이 아니라 호흡이기 때문이다. 그리운 통회 할머니! 지금쯤은『내 탓입니다』가 아닌『거룩하시어라!』의 반열에 끼이시어「통회의 눈물」을 잊으셨으리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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