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 주교-. 국내에서나 국제적으로 명성 높은 주교다. 원주 고속버스 터미날에서 택시를 타고「천주교 원주교구청」으로 가자고 일렀더니 머리를 갸우뚱하던 운전수가『지학순 주교님이 계시는 곳』이라고 하자 금방 알아들었다.
지 구교는「최고의 자선은 사회 정의 구현」이라 외쳤을 땐 정의 기수로 추앙 받았고 뜻 밖의 옥고를 치룰 땐「동양의 민첸티」로 불리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원주교구에선 이 같은 거창한(?) 이름이 아니라「할아버지」라는 친근한 별명이 통용되고 있었다. 교구청에 도착하니 마당을 쓸고 있던 김지석 신부가 사무처 응접실로 기자를 안내했다. 지 주교는 부재 중이었다.
우선 교구청 분위기가 풍기는 깊은 인상은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차별」은 커녕「구별」조차 없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개방적이었고 출입이 자유스러웠다.
원주교구만큼 사목 전반에 걸쳐 평신도가 깊이 참여해 있는 교구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교구 산하 기관의 직원에 대한 인사문제와 처우 및 사제의 생활비 문제까지 거론하는「교구 인사위원회」가 주교와 성직자 2명 평신자 2명으로 구성돼 있는 사실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지 주교와 같이 일을 해본 사람이면 누구든지 국수나 짜장면으로 점심을 함께 먹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지 주교는 교구청에서 평신도가 압도적으로 많은 교구 사목위원회나 기관장 회의를 열 때는 교구청 식장에서 함께 식사를 하게 한다. 1년에 한 번씩은 교구 산하기관의 직원들을 모두 교구청 회식에 차례로 초대, 노고를 치하하고 격려하는가 하면 꾸르실료를 했을 때도 수고한 임원들을 초대한다.
이처럼 지 주교는「아무하고나 함께 먹고 마심으로써」사랑과 정신의 일치뿐 아니라 행동과 삶의 일치를 함께 도모한다. 바로 이 점에서도『주교와 성직자와 평신도가 일치 단결해 있다는 것은 원주교구의 가장 큰 자랑』(김 추기경의 원주교구 창설 10주년 경축사)임을 실감할 수 있다.
원주교구의 관할 구역은 인구 10만 미안인 원주시가 유일한 도시이고 대부분이 가난한 산골과 광산지대, 그리고 동해안의 어촌들이다. 이처럼 어느 교구보다 어려운 여건에서 교구와 본당이 소속 자립하며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한국 교회 최초의 가톨릭센타와 방송국까지 갖게 된 것은 기적 같은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발전은 지 주교의 교구민에 대한 목자적 사랑과 역량, 평신도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 노력의 결정이라 하겠다. 요즘도 원주교구 교육원에선 청년 장년 부인 또는본당별로 평신자의 의식을 계발하는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지 주교는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진리와 정의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사회에 봉사하고 사회를 구해가는 교회상을 심어왔고 또 심고 있다. 교구 본부에 재해대책위원회가 상설돼 있어 필요한 곳에는 언제든지 봉사와 사랑의 손길을 뻗어 주고 또한 봉사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좋은 일을 하면 돈이 생긴다」는 신념을 가진 지 주교는 재해가 발생하면 대책위원회 찝차로 현장을 답사한 후 대책을 세운다
원주 시내 본당과 교회기관은 자전거를 타고 순시하면서 교구민의생활형편도 직접알아본다.
교통순경들은『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교통신호를 지키는 사람은 지 주교님밖에 없다』면서 감탄한단다. 지 주교는 그처럼 준법정신이 강하다.그러나 원조관계로 누구보다 외국 교회와 접촉이 많아야 할「인성회」총재인 지 주교에게 출국이 금지된 현실은 참으로 아이러니칼하다.
각 본당 사정은 매월 본당 신부와 사목회장이 날인한 보고서로 재정 집행 사항 등을 보고 받기 때문에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단다.
지 주교의 일과는 오전 7시30분 교구청 직원들과 함께 봉헌하는 미사로 시작되고 저녁 10시에 끝난다. 점심식사 후엔 잠시 쉬는데 공식 스케줄이 없을 땐 반바지에 맥고모자를 쓰고 맨발로 교구청 구내의 화단과 과수원에서 김 매기를 한단다.
그렇게 일하는 모습이 하도 부지런한 농사꾼 같아서 언젠가 교구청에 들른 외국인 신부가 창 밖을 내다보며『본당에 잡역부가 필요한데 저 할아버지가 좋겠다』고 말한 일이 있단다.
지 주교는 낭비에 질식하는 성미라 용지의 앞면을 쓴 후 버리지 말고 뒷면까지 쓰게 하며 자동차도 차고 앞에 대게 하고 꾸러미를 묶는 끈은 곱게 풀어 다시 쓰게 할 정도란다.
운동으론 방 안에 매달아 놓은 운동기구로 실내운동을 하고 가끔 구내 정구장에서 정구를 친다는데 옥 중에서 얻은 신경통은 이제 완쾌된 것 같고, 식사는 단 것 외엔 가리지 않는다.
평신자인 K씨는『잘못이 있으면 그것을 합리화하려 들지 않고 즉각 사과하는 데 호감이 갔다』면서 지 주교의 인품의 일면을 설명하기도 했다.
무한히 존경은 하지만 그대로 따를 수 없는 도승(道僧) 같은 지도자가 있고, 존경을 하면서 동시에 따를 수 있는 중생(衆生)의 지도자가 있다면 지 주교는 분명히 그 후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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