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간 모든 이의 고백신부로서「죄인들의 피난처」라 불려지던 故 이기준 신부의 유해가 17일 오후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됨으로써 향년 93세의 최고령 성직자는 다시 흙으로 돌아갔다.
이에 앞서 김 추기경과 노기남 대주교 및 정진석 김남수 경갑룡 주교를 비롯한 많은 성직자들은 이 신부의 장례미사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장엄하게 봉헌했다.
『좋은 할아버지처럼 존경하고 사랑하던 이 신부를 마지막 보내드리며 기도한 장례미사 중、김 추기경은『이 신부는 차원 높은 의미로 거목이었다』고 말하며 고백신부로서의 이 신부의 사제다운 모습을 높이 평가했다. 강론 요지는 다음과 같다.
8월 15일 오후 7시 30분、마치 성모님처럼 하늘에 올림을 받은 이 신부는 충주 배티(진천)에서 출생했다. 이 신부는 1942년부터 58년까지 16년간 서울교구 부주교를 역임했다. 그러나 보다 크고 빛나는 업적을 쌓은 것은 1959년 75세로 은퇴해서 작고할 때까지 18년간 모든 이의 고백신부로서「죄인들의 피난처」로 봉사할 때였다. 이 동안 연 수만 명이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았듯이 이 신부를 찾아 고백했다. 이 신부는 병석에 누워서 고백성사를 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신부의 건강이 우려되어『주교의 명입니다』하며 고백성사를 못 주게 한 적도 있다.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사제적 은총이라면 이 신부는 이 은총을 누구보다 많이 받았다. 이 신부를 자애로운 분이라고 하는 말은 그 성품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이 신부는 그 자애로움을 통해 많은 이들의 접근을 쉽게 했다.「수고하는 자와 무거운 짐 진 자는 다 내게로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 신부의 선종으로 한국 교회는 큰 기둥을 잃었다고 하면 이 신부의 체구와 자애로운 표정 때문에 실감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신부는 차원 높은 의미로 거목이었다. 영적(靈的)으로 커서 그 그늘 밑에 모든 이가 찾아들었기 때문이다. 그에겐 물질적인 재산이 아무 것도 없었으나 영적으론 풍부했다. 이 같은 이 신부의 모습 속에 사제의 참모습과 신자의 참모습을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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