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은 동녘 하늘이 벌겋게 달아오른 이튿날 아침의 일이었다.
밤새 식어버린 방바닥으로부터 온 몬에 한기를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곤한 잠결에 머물러 있을 때 어렴풋이 자지러드는 듯한 웃음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잠을 깨려 하여도 쇠뭉치에 얻어맞은 듯한 육신은 더욱더 가라앉아만 갔고、감긴 눈은 풀을 먹여놓기라도 한 듯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울음소리는 막바지의 애원처럼 한마디의 절규는 방안을 진동시켰다.
소년이 이 울음소리에 의해 얼핏 정신을 차리는 순간、온 몸에 배어들었던 냉기에 의해 이내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 이 곁에서는 헤묵어 빛바랜 분홍 한복을 입은 여인이 소년과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깔거나 덮지 않은 채 아직도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 집은 소년에게 전혀 낯선 모습이긴 했으나 어쨌거나 반가운 것은 지붕이 있는 집에서 잠을 잤다는 사실이었고、이것은 소년의 가슴을 뿌듯하게 하였다.
문창호지는 몇 번씩이나 덧발라 붙인 흔적과 함께 바람에 펄럭대고 있었고 빛깔을 잃은 벽지에는 거무튀튀한 곰팡이가 한 가닥의 무늬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방바닥 여기저기에는 소년으로서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세간살이들이 널려 있었다.
그래도 모든 것이 소년에게는 벅찬 아늑함이었을 뿐이다.
또 한 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을 때에야 소년은 그 소리에 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부시시 일어난 소년은 엉금엉금 좁은 방구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두운 한 모퉁이에서 무엇인가가 꿈틀 하는 것을 발견한 소년은 약각 공포를 느꼈지만 조심스레 더듬어가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가 웃저고리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친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딘 채로 불편에 겨운 몸짓을 계속하고 있었다.
소년은 어린 아이가 차가운 방바닥에 맨살로 엎디어 있다든가 아침에 젖을 먹지 않아 배가 고플 것이라는 생각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다만 괴상한 물체가 어두운 구석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두려웠을 뿐이다. 그래서 소년은 부인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아주머니、아주머니、괴상한 것이 있어요. 이것 좀 보세요. 네 아주머니、좀 일어나 보시라구요.
소년은 몇 번이나 부인을 흔들었다. 그제서야 부시시 눈을 뜬 여인은 소년을 낯 설다는 듯 쳐다보았다.
너는 누구냐.
김학중이요.
왜 여기 내 집에 들어와 있지.
제가 어젯밤에 아주머니를 부축해 왔잫아요.
그랬던가. 그런데 왜 나를 흔들고 야단이냐、아아 어지러워.
여인은 머리로 손을 가져가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아주머니、저게 무어예요. 왜 꿈틀거리면서 울어요.
그렇게 몇 번을 되풀이 외쳤을 때에야 여인은 실성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앉았다.
무어가 운다고.
네、저게요.
순간 여인의 눈빛은 불이 붙은 듯했고 단숨에 방구석의 어린 아이를 품에 안아오는 것이었다.
이런…내 정신 좀 보게、아이구 우리 아기야.
여인은 온 몸을 떨듯이 소리 지르며 울어댔다. 그리고 어린 아이를 몇 번씩이나 품에 안고는 했는데 소년은 그 영문을 알 수 없어했다.
아니야. 어서 병원으로 가야지.
여인은 잠결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인 채로 아이를 안고 문지방을 나섰으나 불과 한 발짝을 걷기가 무섭게 쓰러지고 말았다.
으악.
여인은 어린 아이를 기어코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이젠 어린 아이는 울지 않았다.
소년은 어린 애를 안고 여인이 일러준 길을 따라 언덕바지를 뛰어내려가 병원을 향했다.
여덟 살 소년에게는 힘에 겨운 무게였지만 여인의 울음에 놀란 소년은 다급한 일일 거라는 생각에 무거웁다는 느낌은 잊고 있었다.
그러나 달리는 도중에 흘끔 내려다본 어린애는 소년의 눈에는 여전히 하나의 물체일 뿐이었다.
더구나 실제로 어린 아이의 입술은 이미 푸른 색으로 변해 있었고 울음소리는 커녕 방바닥의 한기처럼 차거워져가는 것이었다.
의사는 낭패스런 표정을 지으며 아이의 부모를 모셔오라고 소년에게 지시했다.
어린 아이를 병원에 맡기고 돈암동 산꼭대기로 다시 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도중에 문득 왜 이런 힘든 일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본 소년은 고아원에서 그런 것처럼 도망가려고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왠지 여인이 흐느껴 울던 모습이 소년의 발길을 자꾸 비탈길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돈암동 산꼭대기 지붕이 있어 아늑한 집에는 여인이 쓰러져 깨어나지 못한 채로 누워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소년은 다시 병원으로 달려 내려가서 의사를 불러오거니 또 심부름으로 내려가거니 하면서 병원과 산꼭대기를 대여섯 번 오르내리다가 그날 하루 해를 넘기고 말았다.
결국 어린 아이가 죽었음을 여인이 알게 되었고 그날 저녁에는 다시 지붕이 있는 집으로 올라가 소년과 여인은 하룻밤을 더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을 더 지나다가 여인은 소년을 아들로 삼기로 작정했고 소년은 지붕 있는 집에서 자는 것이 좋아서 늘 그 집에서 살게 되었다.
소년은 한 해 동안을 계속해서 껌팔이로 시내를 돌았고 여인도 건강을 회복하고 일터에 나가면서 집안은 안정되어갔다.
그래서 그 이듬해에는 소년이 학교에 들어갔다.
여인은 자식이 다시 태어난 듯 정성을 다했고、소년은 점차 어머니의 정을 배워갔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지붕이 있는 조용한 집이었다.
이것들이 전부 김형중이란 소년에 관한 이야기였다.
자신의 숨겨진 이야기를 타인 앞에서 들춰보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형화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듯 벗겨 보인 김 부장은 어째서 그렇게 형화에게 증오에 불타는 화살을 보내오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불과 육 개월 전에 일어났던 일에 기인하는 것임을 형화는 똑똑히 기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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