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기도를 드려야 하느님께 합당한 기도가 될 것인가?
오랜 신앙생활을 해 왔음에도 이 문제는 항상 나에게 만족한 해답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기도를 올바르게 드리는 영성과의 접촉을 시도해 보기도 하고 때로는 기도드리면서「주님 이렇게 기도드리면 합당하옵니까 아니면 부당하옵니까 가르쳐 주시옵소서」라고 간청해 보기도 하였다.
드디어 주님은 나로 하여금 루이에불리 신부의 기도의 영성과 접하게 하심으로써 그가 쓴「어떻게 기도할 것인가」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묵상하면서 지난날의 기도를 성찰해 보니 실로 어처구니 없는 기도를 드려 왔다는 것을 통감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기도는 내적 생명력을 상실한 기도였으며 하느님과 참되이 생활한 체험을 가지지 못한 기도였으며 하느님을 현양할 수 없는 기도였으며 그분의 위격을 자의대로 변화시키려 한 연성의 기도였으며 주님을 채 만나지도 못한 기도였으며 주님의 말씀은 듣지도 않고 일방적인 독백이나 선언으로 끝난 기도였으며 그저 습관적으로 위선을 호도하는 기도였으며 이기적인 청원에만 몰두하여 주님께 대한 응답을 외면한 기도였으며 주께서 문을 두드려도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아니한 기도였으며 주님께 시간 여유를 드리지 아니한 기도였으며 반신반의하는 믿음이 약한 기도였으며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주님을 사랑한다고 거짓말을 한 기도였으며 마음 안에 세상의 사물을 가득 채워놓고 주께서 임하실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기도였으며 얻어내는 데만 관심이 있고 주님에게는 관심이 없는 기도였으며 성령의 도움을 거절한 기도였으며 주께서 들어주시지 않으면 성급하게 실망하는 기도였으며 하느님 앞에서 죽고 부활하지 못한 기도였으며 기도가 활동 즉 사랑의 프로그램인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허구에 찬 기도였으며 주님이 속으신 기도요 내 자신이 속은 기도였던가를 뉘우친다.
항상 기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어떻게 들어주시는가가 초점이 된다. 그러나 루이에불리 신부는 이에 대하여 명확한 대답을 하고 있다. 그분은 우리가 원하는 때에 우리가 원하는 양식으로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고 우선 우리의 신앙을 더욱 깊게 하시고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게 들어 허락하신다.
기도는 결코 감정과 엄격주의 혹은 자기 만족을 양육하는 인공적인 파라다이스가 아니고 오직 자기 초월이고 주님과 밀착하여 그분의 말씀을 듣고 응답하며 사랑의 계획을 주고받는 대화임을 다시 한 번 체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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