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현대 영웅」이나「살아있는 성자」를 논한다면 누구나 서슴치 않고 인도의 마더 데레사를 말할 것이다.
보통천으로 짠 인도 고유의 부인용「사리」의 흰 수도복을 입고서 버림 받고 고통 받으며 가난한 이들 사이에서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 여성은 어떤 굳은 신념과 특수한 소명(召命) 아래 살고 있기에 뭇사람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특히 많은 여성들이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일까.
누구든 이 사람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데레사 수녀야말로 오늘날 우리 세계가 가장 필요로하는 인물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흔히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런 유명함이나 명성은 아니다. 빛나는 유명(有名)이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아주 평범한 인간들 속에 파묻혀서 인간의 고통과 가난을 함께 겪는 겸손한 모습의 위대함인 것이다.
◎평범 속의 위대함
데레사 수녀는 1910년 8월 27일 유고슬라비아「스코프예서」에서 알바니아인 농부를 부모로 출생하였다. 그녀의 가정은 매우 행복하였고 그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에 수도생활에 대한 성소(聖召)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그 부르심에 답하고자 어느 길을 택해야 할 것인지를 찾고 있던 중 한 번은 인도에서 돌아온 선교사들로부터 그곳에서 일하는 수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드디어 자신의 길을 찾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28년 11월, 그녀가 18세가 되던 해에「렐트퀀함」의 로레또 수녀회에 입회하기 위해 아일랜드의「더블린」으로 갔으며 다음에는 인도「다르엘링」으로 가서 수련을 쌓았다.
그 후 수녀원이 경영하는 고등학교에서 선생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이때에 이르러서 그는 자신의 길은 이것이 아니라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편안한 교실에서 부유한 가정의 가녀들을 교육할 때 그녀는 담 너머에서 들려오는 불쌍한 이들의 신음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길에 나서면 수많은 손들이 수녀 앞에 구걸을 해오고 쓰레기처럼 길에 버려진 채 죽어가는 사람들의 신음 소리는 발걸음을 얼어붙게 하였다.
『무언가 해야 한다…무언가 해야만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길은 빈자들 사이에 보잘 것 없는 이들 사이에 있음을 느꼈다.
데레사 수녀는 이것을 가리켜 도 하나의 다른 성소(聖召)라고 말하였다.
1946년 9월 어느날, 그녀는 기차를 타고 북인도로 가고 있었는데 기차 안에서 그는 수녀원을 떠나 극빈자들 사이에서 살면서 그들을 도와야 함을 강하게 느꼈다. 이는 마치 하느님의 명령으로서 이에 불응함은 신앙을 버리는 것이나 같은 것이었다고 데레사 수녀는 후에 말하였다. 그녀는 수녀원 총장에게 자신이 받은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오로지 하느님을 보호자요 지도자로 삼아 빈자 중의 빈자들을 위해 수녀원 밖으로 나가 거기에서 살 수 있도록 허락을 청했다. 이에 총장 수녀는『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언제고 다시 돌아오고자 할 때에는 우리는 두 팔을 벌리고 당신을 맞아들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허락을 해주었다.
48년 8월 교황 삐오 12세로부터 수녀원을 떠나기 위한 허락을 받은 그녀는 그날로 로레또회의 수도복을 벗고 하얀 사리와 이 마을에는 푸른 줄무늬가 있고 어깨에 십자가를 단 새 수도복으로 갈아입었다. 이렇게 하여 그녀가「캘커타」의 빈민촌에서 봉사하며 살고자 하는 원의가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너와 나의 아픔이
그녀가 첫 번째로 한 일은 위중한 병에 대한 그리고 이에 요구되는 필수적 치료 방법에 대해 배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선교사 수녀들이 경영하는 의료기관에 가서 단시일 교육과정을 밟고 그해 성탄일에 다시「캘커타」로 돌아와 빈민가에서 곧 일을 시작하였다. 이틀 만에 그녀는 빈자들을 위한 학교를 열도록 허가를 받아「캘커타」에 최초로 빈자들을 위한 학교가 세워졌다.
그러나 데레사 수녀가 한 일 중에서 가장 거칠고 따라서 널리 찬양 받는 작업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그녀는 한 여인이 거리에서 죽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여인의 발은 쥐에게 반쯤 뜯어 먹혔고 상처에는 구더기가 우글거렸다. 어려운 교섭을 벌인 끝에야 겨우 그 여자를 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데레사 수녀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수용할「방 하나만」마련해 달라고 당국에 졸라댔다. 이렇게 해서 얻어낸 것이 힌두교의 죽음의 여신「칼리시원」근처에 있는 한때 순례자들이 쉬던 건물이었다.
그녀는 이 건물을「니르말흘리네이」(순수한 마음)이라고 이름 짓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수용했다. 열광적인 힌두교 신자들이 이를 항의하자 인도 정부 당국은『동의합니다. 여러분 중의 누군가 나서서 수녀들이 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데레사 수녀를 신전에서 내보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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