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나 꼴 좀 베가지구 올께유』
『아니 꼴은 아침부터 뭔 꼴이여?』
『예 잠간이믄 돼유우』
쳐녀 목동! 맹도영양, 마을에서 억척이 처녀로 알려진 도영은 오늘도 누렁둥이의 꼴을 베러 산으로 달려간다
오늘은 읍내에서 품평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도영의 가슴은 입학 시험을 치러 가는 학생마냥 기쁘고 두근거렸다.
그러나 동생 도식은 학교도 가지 않은 채 어머니를 만나 생투정이다.
『아니? 도식아 왜 잔뜩 찌프리고 그러냐?』
『누렁둥이 데리구 읍내 간다지?』
『그려!』
『팔려구 그러는 거지 우리 누렁둥이 또 팔아버릴려구?』
어린 도식은 여느 때처럼 시장에 내다팔아 버리는 줄 알고 눈물이 글썽해온다. 얼마나 정들여 왔던 소들인가!
정들며 키우면 팔아버리고 또 키우면 팔아버리고 어린 도식은 그럴 때마다 누나 도영과 함께 목을 놓고 울곤 했었다.
어머니께서 누렁이가 꼭 돌아온다는 확약을 받고 비로소 싱글벙글 학교로 가는 도식.
어느 사이에 도영은 꼴을 잔뜩 베어 머리에 이고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황소 품평대회에 나가는 도영이네를 배운해 준다.
『꼭 일등 혀야 써』
『암 같은 값이면 일등 해야지』
쩔렁쩔렁 소방울을 울리며 누렁이는 도영과 어머니를 따라 산허리를 돌아가고 있다.
『엄니? 왜 그러뉴! 우리 누렁둥이 한우 품평대회에 용약 출전하는 판인디 나팔은 못불망정 뚜우더구 있음 써서?』
어머니는 두 눈에 거물거물 글썽해지는 눈물을 쑥 닦으며 코를 푸는 척 딴청을 댄다.
생각하면 어찌 눈물이 절로 나지 않으랴
도영이 나이 23살 한창 꽃다운 나이에… 얼굴에 분 바르고 고운 물색옷 입히고 시집 보낼 그 나이에 딸을 자기는 어떻게 데리고 있는가.
도영이 아버지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지만 안했어도 지금쯤 도영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디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든지 좋은 집안에 시집을 보냈을 텐데-
손은 떡두꺼비 같이 돼 가지고 소를 키우고 논밭을 가느라 꼭 선머슴 꼴이 되었으니.
어머니는 자연 한숨을 쉬며 딸의 나이를 물었다.
『엄니도 시상에 즈그딸 나이도 모르는 엄니가 어디 계셔유』
『그게 아니여 네가 열한 살부터 소를 키워 해마다 겨울이면 팔었으닝께 지금 열두 마리째-그니까 스물시 살이구먼!』
도영은 어머니의 심중을 알고도 남았다. 해마다 12해 동안 지성으로 키운 소들을 내다 팔면서 도영이네 집은 차츰 살림을 안정시켜 갔다.
그렇게 다니고 싶던 대학교! 입학 시헙에 합격을 하고 새 교복을 맞춰놓고도 집안 사정 때문에 그 교복을 못 입어본 도영! 그러나 강의록으로 공부해서 이젠 떳떳하게 고등학교 졸업생이 되지 아니했는가?
동리 남학생들의 놀림을 수없이 받으면서도 지게질 꼴베기 등 소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아니했던 도영!
도영은 새삼스레 누렁이가 대견스러웠다.
지금까지 12해 동안 키워 판 소 중에 가장 잘 자라준 누렁이 여름엔 모기에 뜯길세라 방에 친 모기장을 덮어 키웠고 또 누렁이가 꼴을 잘못 먹고 배앓이로 죽어갈 적에 뱃가죽의 털이 다 빠지도록 어머니와 함께 누렁이 배를 문질러 주던 일! 드디어 누렁이가 다시 새김질을 시작할 때 누렁이 목을 껴앉고 울던 일! 도영은 새삼 누렁이 배에 쏟은 정성들을 되새길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놀리던 말이 떠올라 빙그레 웃는다.
『아구매 즈그 서방헌테도 저런 정성을 못 쏟을 거여』
『왜 못 쏟어 도영이 애인은 누군지 참 행복헐꺼여 소헌테 쏟는 정성을 보면 다 알쪼지 뭐여?』도영은 마음 속으로 되뇌인다.
『누렁이 너보다 더 소중한 애인이 나헌테 있을 것 같으냐? 너는 누구보다 친한 내 친구여! 하나뿐인!』
12해 동안 소를 키워오니 이제는 소와 자연스럽게 대화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춘원 이광수 선생님도 소는 짐승 중의 부처라고 말씀했지 않은가? 소는 얌전하고 신중하고 느릿느릿하지만 꾸준하게 여간한 일로 화를 내지 않고 투덜대기를 하나 공을 내세우기를 하나 평생을 사람에게 봉사를 다하면서도 공치사 한 번을 하나 죽어서까지 남김 없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는 소.
도영은 이 세상에 소처럼 귀하고 소중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윽고 품평회장!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느라 도영은 큰 보자기를 물에 적셔 누렁이를 시원하게 해준다.
소 등에 싣고온 꼴을 먹인다.
생각하면 소처럼 불쌍한 짐승이 또 없는 것 같다. 지금은 세상에서 사라졌을 정 들여 키웠던 소들! 점맥이 누렁둥이 땅따리 등! 이제 그 소들의 힘으로 부농이 된 도영이여! 도영은 형제 같이 아끼고 보살폈던 소들을 팔 때마다 얼마나 소리쳐 울었는지 모른다.
도영이의 누렁이가 품평회에서 장원을 했다. 각 신문사와 방송국에서 기자들이 달려와 질문을 한다. 어떻게 소를 이처럼 잘 키웠느냐구?
도영은 부끄러워서 대답도 못했다. 그러나 말하고 싶다. 누렁이는 내가 가장 아끼는 소예유! 이 세상에 우리 누렁이보다 더 소중한 것은 내게 없어유.
그 뒤부터 도영이네 소들은 출전할 때마다 장원을 한다. 도에서 받은 장려상 전국대회에서 받은 장관상 두둑한 상금으로 계속 소를 키우고 있는 처녀 목동 맹도영. 이제 그는 소에 대한 일이라면 박사라는 칭호를 마을에서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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