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리강습 중 휴식시간에 십여 명 전교사가 모여 가벼운 농담을 한 일이 있었다. 대화의 중심은 신구교우에 대한 문제였는데 공교롭게도 그곳에 있었던 전교사들이 신구교우가 반반이었다. 그래서 자연히 중론이 양편으로 갈려 반론이 진지하였다.『요즈음 증가하는 냉담자 수의 대부분이 신교우이고 신교우는 신앙의 뿌리가 깊지 못해 흔들리기 쉽다』고 하자『어느 지역 교회에서든지 한 두 사람 골치 아픈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그들은 대개 교중을 잘 이해하는 구교우이고 구교우의 신앙은 형식적이고 미온적이다』라는 성급한 반론이 나와 급기야 신구교우의 약점만을 지적하는 극단론이 벌어졌었다.
소위「신교우」「구교우」라는 말은 어느 개인을 두고 하는 말이기보다는 신앙생활을 해온 역사 혹은 대대로 이어진「신앙의 가문」을 들어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즉 흔히 나는「구교우」라고 하는 말은 대를 이어 지켜온「신앙의 가풍」속에서 교육되어진 가족 중의 한 사람이란 뜻이지 단순히 어느 개인 하나가 구교우일 수는 없는 것이다. 단순히 개인적으로 볼 때는 철이 들기 시작하여 신앙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시작할 때부터 사실상의 교우가 된것 이다. 이 말은 유아세례의 성사적 효능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받아들일 수용성에 달하지 못한 유아 시절은 영세하였다 하더라도 신앙의 유보상태일 뿐이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신앙의 가문적 전통을 과장하여 자기 것인 양, 소위「뱃속교우(태중교우)」라는 말이 비판 없이 실제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신앙의 가풍」과「유아세례」문제가 서로 깊은 상관관계로 연구되어져야 할 것이다.
농촌사목에 경험 많으신 S 신부님은 이런 사실을 많이 보아오셨기에 신앙의 내실을 강조하여「교우」와「신자」를 한문의 뜻으로 풀이 구별하여 쓰시기를 즐기신다.
『우리 교회에 교우는 많지만 신자는 적어요. 교회 밖에도 영세 안 한 교우는 많지요』사실, 영생을 누릴 자는「믿음의 사람(信者)」이지「교회의 벗(敎友)」일 수는 없는 것이다. 풍자 섞인 말이지만 의미 있는 말씀으로 여겼다. 신구교우 운운…하기 전에「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소위「신교우」인 나는 구교우를 존경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좋은「신앙의 가풍」안에서 교육된 참신앙인을 존경한다. 그들을 대신할 때마다 노송(老松)을 쳐다보는 겨울 나그네 심정이 되기 때문이다.
20년 전-. 4대째 이어오는 구교우 공소에 처음 갔었다. 우선 공소 건물부터가 외국 원조에 의한 것이 아니기에 맘에 들었다. 초가지붕에 쪽마루를 붙여 이은 널찍한 강당 바닥이 오랜 세월 닦아내어 암갈색으로 번쩍인다.
벽에는 세련되지 않은 투박한 그림들이 붙어 있고 횡목마다 주렁주렁 달아놓은 큼직한 남포등이 이색지다. 소나무를 껍질도 벗기지 않은 채 얼키설키 이은 종각에서 둔탁한 종소리가 울려퍼지자 한복에 두루막을 걸쳐 입고 갓까지 정중히 쓴 교우들이 삼삼오오 짝지어 몰려온다. 신부님께 문안인사로 큰절을 올린 다음 공손히 무릎 꿇고 말마다『죄인이(罪人)-운운』하는 태도가 사제 존경의 염이 철철 넘친다. 공소회장의 지시에 질서있게 움직이는 모습이 경건하기까지 하다. 구성지게 염하는 경문 소리는 초기 교회의 전통이 엿보여 숙연하게 한다. 돌아다보니 모두 겸허하고 신앙에 찬 눈빛들이다. 그런데 20년이 다 가지 않아 그런 구교우들을 찾기 힘들게 되었다.
신앙 선조를 잊어버린 후손들만 사는 것일까? 입으로만「아브라함의 후손들」이라 자랑하는 골 빈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슬픈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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