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사세오! 기름 사세요』
『아니? 어머니 어머니 아니세요?』
『도규야 네가 네가 제대를 했구나』
『네 무사히 제대를 했습니다 이젠』
나는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싶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모처럼 어머니께서 받아주신 소주잔도 제대로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 편찮으시면서도 기름 장수 행상을 하시다니 불효막심합니다. 이젠 제가 돌아왔으니 안심하세요』
그러나 취직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나는 삼 년이란 길지 않은 군대생활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바보스럽게도 참으로 어리석게도 한 여자로 인해서 탈영이라는 일생의 치명적인 낙인이 찍히어 근 6년 가까운 세월을 숨어 살아야만 했던 뼈 아픈 과거가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1969년에 긴 은둔생활을 청산하고 자수를 결행했습니다. 71년에 만기제대를 해서 드디어 떳떳한 신분이 되었지만 대학 중퇴라는 학력을 가지고는 어떤 직장에서도 나를 받아주지 아니했습니다. 그렇다고 일흔이 넘으신 홀어머니의 고생을 더 이상 참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대학 2학년까지 다녔다는 하찮은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손쉬운 막노동…나는 막노동판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약간의 망설임도 있었고 수치심도 느꼈지만 그 길밖에는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없는데는 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김군 세멘트 한 푸대 메고 오는데 그렇게 비실비실해서야 무엇에 써먹겠어. 내일부턴 딴 사람 써야겠네』
『아 아닙니다. 제가 어째서 그러십니까. 문제 없습니다. 남 하는 만큼은 저도 합니다.』
『정말 자신 있나?』
『그럼요. 반장님!』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온 힘을 다해 나는 노동일을 해냈고 숙달된 미장공이 되기 위해 분투했습니다.
72년 봄부터 본격적인 미장공이 되어가는 무렵 여름이었습니다.
『악-』
『앗 김군 김군!』
『앗 김씨가 떨어졌다. 김씨가 철판이 무너진 거야』
어렴풋이 인부들이 떠드는 소리를 멀리 들으며 나는 낙반사고로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큰 부상이었습니다. 공사를 맡았던 토건회사가 지정해주는 병원에서 얼마간 치료를 받았으나 불행히도 늑막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5일 만에 강제 퇴원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도규야, 너무 낙담하지 말아라. 마침 이웃 아주머니가 간호원 생활을 오래 하셨다니 좀 돌봐 달라고 하마』
어머니의 지극하신 사랑과 이웃 간호원 아줌마의 친절로 내 병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웬만해지자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는 또 새로운 공사장에 달려나갔습니다.
『김군, 나는 처음엔 자네를 믿지 않았네. 그래도 명색이 대학을 다니던 사람이 어떻게 우리 같이 막노동판에서 미장이 일을 할 수 있는가? 하고 말일세』
『박씨 아저씨도 참. 아무 염려 마시고 제발 뒤나 좀 밀어주십시오』
이웃집 박씨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나는 그분의 미장 솜씨를 열심히 익혔습니다. 그 일에 뛰어든 지 2년 만에 나는 이제 기술자라는 소리를 듣게되었습니다. 더구나 눈여겨 보아두었던 건축 방면의 하청업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풍부한 경험과 관록을 가지고서도 공사판에서 하청을 맡아 성사시키기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다, 바로 저것이다. 내가 그 일을 맡아 성사시켜 보리라.
다행인지 74년에 주택공사 단독주택 건립공사에 그 방면에 제법 노련한 이씨라는 사람의 알선으로 50만 원짜리 조그마한 일을 맡았습니다. 보름 동안에 8만여 원의 이득을 본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성사시켜본 일이었습니다.
나는 두 번째 일을 맡았습니다.
뜻밖에도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노임관계로 데리고 있던 네 명의 데모도(조수)에게 집단폭행을 당해야 했습니다.
주택공사에서 개인업자에게 독립공사로 떼어준 것인데 그 대표자가 상습 도박꾼으로 구속되는 바람에 노임이 지불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직접 저의 잘못은 아니었으나 책임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온갖 모욕을 견디어냈습니다.
『김군 잘 참았네 이런 판에서 일하려면 그런 사건은 늘 겪는 거야. 잘 참았어』
박씨 아저씨는 내게 막걸리를 받아 주시면서 위로를 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당당한 기술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작년 팔 월 하순경! 우연히 대학 친구를 만나 30평짜리 단독주택을 맡게 되었습니다. 나는 심혈을 기울여 그 일을 이룩했습니다.
그 공사로 얻은 이익이 삼십여만 원. 나는 어머니를 위해 전셋방을 얻어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쁜 것은 이 세상에는 아직도 인정이 메마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사실입니다. 노력하는 것만이 보람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앞으로 계속 집을 지을 것입니다. 그 친구네 집처럼 견고하고 좋은 공사를 해서 입주자들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도 제 집을 마련할 것입니다. 장가도 들고 어머니를 위해 손주도 낳아드릴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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