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땅은 7할이 산지로 되어 있다. 텅 빈 야산에 녹색 혁명을 꿈구는 사나이. 그는 전 국토의 7할인 산지에 유실수를 가꾸어 공해 없는 생산공장을 만들려고 한다.
푸른 나무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외화 획득과 경제 성장을 가져다줄 유실수…
수원시 곡반정동 한국유실수 과학연구원 고문 농학박사 박 교수.
올해 마흔에 접어든 박교수씨는 대학 교수라서 교수가 아니라 가르칠 교 빼어날 수 원래 교수라는 이름을 지니고 성장했다.
주변 사람들은 39살 된 나이에 어떻게 그가 박사가 되었으며 무엇으로 학위를 받았는지 궁금해한다.
「유근역위접목의 극성 교정 분화」
얼핏 들어 알쏭달쏭한 말이다. 그러나
「유근역위접목의 극성 교정 분화」란 육종학계에서는 획기적인 개발이고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새로운 접목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어린 뿌리 거꾸로 접 붙이기』가 된다.
그럼 바로 이『어린 뿌리 거꾸로 접 붙이기』에 귀중한 청춘을 다 바친 박교수 박사의 집을 찾기로 한다.
방금 강의를 마치고 귀가한 박교수씨는 저고리를 벗어 아내에게 건네주며 묻는다.
『집엔 별 일 없었오?』
『네 강의는 잘 하셨어요?』
『응 재미있었어! 진지하고 흥미있게 들어줬구 학생들두…』
아내는 의자에 앉은 박교수씨에게 한 통의 편지를 건네주며 낮에 있었던 얘기를 들려준다.
『양주 이옹께서 밤 한 가마를 보내 오셨어요!』
『으응 이옹께서?』
『편지 여깄어요』
박교수는 서둘러 편지를 뜯는다.
이옹의 편지는 아주 자상하게 쓰여져 있었다.
『박교수 박사, 올해 수확한 밤 중에서 우선 시식이나 해 보시라고 한 가마를 보냅니다. 직접 들릴까도 생각했으나 밤 저장고를 짓는 일이 남아서 우선 인편으로 보내오.
오만 평 북향받이에 빽빽이 들어찬 우리 미니 밤나무들…꼭 내 손주들처럼 작고 앙징스런 밤나무들을 바라볼 때마다 난 박형을 생각하게 되지요.
우리 밤나무들은 바로 박형이 개발한 유대접목, 그 중에서도 가장 새로운「어린 뿌리 거꾸로 접 붙이기」에 의해 키워진 게 아니겠오? 그런 뜻에서는 박형도 우리 밤을 대할 때 예사 기분은 아닐 거외다.』
박교수는 가슴이 메어온다. 이옹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마치 친자식 같이 키워낸 그 어린 나무들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그는 계속해서 편지를 읽는다.『저장고 다 짓는 대로 일차 수원에 들리리다. 개간이 끝난 남향받이와 서향받이에 박형이 이미 귀화 육종한「아몬드」도 심어야겠고 흑호도 칼파치안 호도도 심어 보고 싶고 폐칸과 황금포도도 욕심이 나는구려. 좀 깊은 곳에는 오리나무를 닮았다는 하젤낫도 심어보고 싶고 말이오.
아무쪼록 찾아가거든 친절한 기술 지도를 바라겠오! 총총양주 이명규』
편지를 다 읽은 박교수씨는 새삼 전주 광양 충주 화성 이천 등지에서 독농가들에 의해 수확되고 있는 미니 밤나무들…그리고 각종 귀화육종시킨 신종 유실수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박교수씨의 꿈이, 푸른 꿈이 그 나무들 속에서 부풀어온다.
박교수씨의 고향은 오봉산이 아름답게 솟아있고 모래사장이 곱던 토강변 밤나무 대추나무 호도나무들이 많은 산촌이었다.
그러나 열매는 풍요하게 열렸지만 마을 사람들은 가난했었다.
보리고개만 되면 이웃들은 수수죽과 나물죽으로 연명을 했고 그럴 때마다 어린 교수는 밥을 몰래 가져다 굶주리는 친구를 먹여 주었다.
『덕만아 먹어』
『미안해 교수야』
『우리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우리는 너무 게을러서 굶주리는 사람이 많은 거래. 어서 먹고 기운 차려서 부지런히 일해야 해』
『아냐 우리 아버진 게으른 사람이 아니야. 울 아버지 참 착실한 사람이여』
『그래 미안하다. 너희 아버지를 두고 그런 말한 것은 아니야. 안타까와서 그런 거지』
『정말이지. 울 아버진 비록 남의 논 소작 지어 먹어두 게으른 분은 아니란 말여. 근디 워찌 된 노릇인지 해마다 뼛꼴 빠지게 일을 해두 지주헌티 바치고 나면 맨날 도로아미타불이지! 아버지가 불쌍해 아버지가』
어린 교수는 덕만이의 슬픈 사정을 할머니께 말씀드렸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주시던 말씀
『사람은 부지런해야 한다. 머리를 써야 해. 꽤가 있어야 쓴다. 헐벗고 굶주리는 건 여하간에 게을러서 그런 거야. 머리를 안 써서 그런 거여! 꾀가 없어서 그런 거여. 지혜를 써야 돼』
그러나 어린 교수는 덕만네와 같은 이웃들이 불쌍하기만 했다.
『아! 쌀! 보리 원수 같은 곡식, 왜왜 우린 쌀과 보리 아니면 감자나 수수만 생각했을까? 밤을 먹으면 안 되나! 그러나 밤은 15년씩이나 기다려야 해 아참! 그 해에 씨 뿌리면 그 해로 자라서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그런 밤나무는 없을까? 도마도나 고추처럼 그 해에 자라서 주렁주렁 열매를 맺는 그런 밤나무는 없을까?』
어린 교수는 뒷산에서 자라고 있는 밤나무를 바라보며 손을 불끈 쥐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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