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심는다>제하의 선생님 글을 읽고 혹시 선생님이 20년 전 제가 어릴 때 제게 교리를 가르쳐 주시던 분이 아닐까 해서 한 자 올립니다』
뜻 밖의 편지를 받고 누구일까 생각을 굴리며 곧 회답하였더니 며칠 후 한 청년이 찾아왔다.
유심히 보니 몰라보게 성장한 그의 모습이지만 어린 시절의 모습을 조금 알아볼 수 있었다. 반가움에 손을 잡고 영접하였다. 매스콤의 덕택으로 예기치 않았던 옛 사제간의 상봉이 이루어진 것이다. 매스콤의 역할은 참으로 놀라운 것임을 다시 느꼈다. 오랜만의 대면이었기에 그를 전송하고서도 못다 나눈 얘기들이 너무 많았다. 돌연한 그의 방문은 아득히 잊혀져가던 20년 전을 회상하게 하였다. 후회와 아쉬움이 서린 순진무후하던 시절! 이제 성장하여 모두 제 역할을 책임지고 있을 그때 그 어린 모습들! 그 까만 눈동자들! 돌아오지 않을 저 너머 시간 저편에 한 편의 영상으로 머물러 있다. 교리를 가르치던 첫 교리시간, 그 시간을 생각할 때면 지금까지도 어리둥절해진다.
내 나름대로는 아는 것이 좀 있답시고 그까짓 국민학생들쯤이야 한 시간에 못 가르칠까 싶어 별 준비도 없이 썩 들어선 교실-. 새 선생에 대한 호기심으로 빤짝이는 저 눈동자들. 1백40개의 눈동자가 일시에 내게 집중되자 당황하여 귀 밑까지 붉어왔다.
아! 이 두려운 시선을 어쩌랴!
내 하나하나 동작마다 표정 하나하나마다 끈질기게 따라잡는 저 위력의 눈빛! 마음을 다그치며 학생들을 굽어보니 눈들의 숲으로 덮여 있다. 얼굴도 모습도 보이지 않고 눈들만 초롱초롱 떠 있다. 확대된 눈들만의 숲에서 빨리 도망치고 싶어 어물어물. 그 한 시간이 너무도 길어 애꿎은 시계만 수없이 들여다보았다.
「안다」는 것과「가르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고 가르친다는 것은 특수한 기술임을 그때 깊이 깨달았다. 그 후 그것이 자극되어 연 80권 이상의 책을 독파하였고 가르치는 방법에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하였다. 그제서야 교단 아래 아동들의 표정까지 일일이 살필 수가 있었다.말하자면 제 길을 찾는 것이랄까.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때 아동들이 불쌍하다.
시청각 교재는 물론 뚜렷한 교리 지도서 하나 없었다. 기껏해야 교리강령에 실린 그림, 소년성서에 실린 맛 없는 얘기 정도뿐이었다. 여름학교에 몰려오면 문답암송이 대부분이고 암송의 지루함을 피해주기 위한 방편으로 성가와 얘기 몇 토막이 고작이다.
그것도 숙제를 안 해오면 손바닥 맞기가 일쑤다. 교사의 무능을 교사도 모른 채 떠드는 아동을 통솔한답시고 호통과 기압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심히 부끄럽다. 그렇다고 아동들은 그 맘에 안 드는 교리시간에 빠지지도 못했다. 결석이 심한 아동의 부모에게는 성탄 성사가 거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변변치 못한 교리반에 아동들의 수가 점점 늘어 처음 70명에서 몇 달이 안 되어 2백 명 선을 넘었다.
너무 숫자가 많아져서 신덕반 망덕반 애덕반 세 반으로 나누어 오전에 두 반 오후에 한 반을 지도하였다. 아동들이 많아지자 더욱 열성이 나고 교리 지도에 자신도 좀 생겼다. 비록 서툰 선생이었지만(지금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듣고 있는 꼬마들의 표정은 진지하였다. 조금만 지루하면『선생님, 이야기 하나 해 주세요』천진한 간청에『그래 그래 조금만 더 하고 하자』세월이 20년이 흘렀지만 그때 그 음성들은 생생하다. 지금은 거의 다 엄마 아빠들이 되어 있겠지만 그때 그 시절에 그들이 내게 교리를 배웠다는 지난 추억들은 오래 남게 되나 보다. 그러기에 그의 예기치 않은 방문으로 이렇게 지난날을 쓰게 만드니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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