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사랑에 대한 몇 가지 원리를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첫째는 일치의 원리이며 둘째는 주는 원리이며 세째는 받는 원리이며 네째는 지성의 원리이며 다섯째는 배려와 존경의 원리이고 여섯째는 믿음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이들 여섯 가지 원리는 서로가 분리 독립되어 있는 것은 물론 아니고 서로는 서로의 의지가 되어 있고 또는 한 가지 원리는 다른 원리를 동시에 포함하고 또는 동시적으로 행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서 그 원리들을 하나씩 떼어서 생각하는 것은 설명한다는 입장에서 듣는 사람을 의식하여 하는 것이니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하에 내가 생각하는 원리들이 독자 개인 개인에게는 혹시 미흡한 점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점이 있다면 서슴치 말고 저에게 일러 주시면 다시 고쳐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일치(一致)의 원리부터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랑이 근본적으로 하나이며 둘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하나이며 둘이 아닌 때문이요 사람의 몸이 하나이며 둘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일치라고 하는 말은 하나가 되는 의미로부터 유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란 무엇인가. 이 하나라고 하는 뜻이 사랑의 의미와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성이 있는냐를 생각해 보면 해 볼수록 재미있는 사랑의 묘미를 깨닫게 됩니다.
우선 하나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셈을 하는 경우의 하나라고 하는 것은 시작ㆍ출발의 수입니다.
정말로 하나가 시작이냐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또 철저하게 생각해 보면 반드시 그런 결론이 옳다고는 할 수 없을런지 모르나 하나 말고 둘부터 시작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더욱히 영(靈)으로부터시작하지 않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부터의 셈이 옳으냐 아니면 영(靈)으로부터 셈을 시작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것은 결국 논리적으로 따져 보면 없는(無) 데서 시작하느냐 있는(有) 데서 시작하냐의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없는 데서 하나 즉 0ㆍ1ㆍ2로 진행된다면 그것은 무에서 유가 나타난 것을 보게 되고 1ㆍ2ㆍ3으로 나간다면 유에서 유의 운행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더 깊은 철학적인 화제로 동원될 수 있으나 일언이 폐지하여 하나, 둘, 셋이지 영, 하나, 둘, 셋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묘하게도 서양 사람들은 하나의 의미가 결코 우리와 같은 것이 아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인공위성을 카운트ㆍ다운하는데도 그렇고 그 밖의 수적 개념에도 결코 하나가 시작의 의미로 부각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하나」가 사랑의 의미를 부각한다는 것은 결코 보편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다분히 국부적인 의미 또는 한국적 의미 연관에서만 타당성이 있다고 보겠습니다. 적어도 한국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는 시작임에 틀림없고 그것이 사랑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달도 하나, 해도 하나, 사랑도 하나가 그토록 매력적 표현이요 사랑이 하나이며 하나가 시작이란 문맥은 예술성조차 띠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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