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우리 선조들의 신앙을 높이 찬양하는 복자성월이다. 우리들 신앙인의 궁극 목적이 사주구령(事主救靈)이라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각자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는 순교정신으로 해야 한다.
우리는 피를 흘려 순교는 못할망정 순교정신을 가져야 하겠고 그 정신으로 참된 신앙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순교 순국 순결 등은 인간 생애에서 다 고귀한 일이다. 나라를 위하고 절개를 위하여 죽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므로 고귀하다. 순국 순결이 고귀하다면 순교는 차원 높은 고귀의 절정인 것이다. 조국을 구하기 위해서나 나 개인의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서 목숨을 희생함이 자아의식의 소산이라면 순교는 모든 나라 모든 일류의 대주재이신 하느님을 증거하기 위하여 자아를 망각한 희생의 제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절정의 고귀한 순교를 하기 위해서는 굳센 신앙이 있어야 하며 백절불굴의 신앙을 가지기 위하여는 교리 지식과 주님의 은총이 절대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초대 순교 선열들은 스승이 없어 교리에 무식했고 은총의 기관인 칠성사를 베풀어 줄 사람이 없어 성세성사의 부득이한 약식 대세만을 받은 분들이었다. 이렇게 무지무능한 대세자들로서 1백여 년에 걸쳐 장렬한 순교자가 몇천 명에 달했던고! 아 장하다. 이 역사적 사실은 세계 가톨릭 사상 미증유의 사실이면서 우리 민족만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순교 선열들은 복음의 진리를 찾기에 자주성이 강하면서 신속했고 그 찾은 진리를 신봉하기에 열렬하면서 성실했고 그를 지키기에 굳세고도 용감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흘린 핏방울 속에 그 진리의 씨를 담아 이 강산에 골고루 뿌렸다.
좋은 땅에 뿌려진 그 씨는 그분들의 피로 자라서 수십 수백의 알곡을 맺어 이제 백만을 넘었다. 우리 백만 후손들이 이어받은 그분들 순혈의 상속이요 유산인 것이다. 우리는 그 선열들이 이런 고귀한 유산을 우리에게 끼쳐주기 위하여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보는 것이 그저 옳다기보다 의무가 아닌가 싶다. 우리 선열들은 방방곡곡으로 흩어져 여러 가지 방법을 쓰면서 전도를 했지만 결국에는 모두 순교함으로써 그 효과를 거두게 되었고 그들의 후계자들 역시 순교함으로써 교회를 굳건하게 확립하고 발전시켰다. 그래서 순교성신은 그리스도 교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며 때때로 강력제가 된다. 2천년의 교회사를 보면 무사태평시의 신앙생활은 신성미를 잃은 교회 불패일로에 빠진 교회 예컨대 중세기의 신앙생활이 그렇듯이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교회는 항상 박해의 대상이 되리라고 미리 말씀하셨고 때때로 교회에다 박해를 허락하시어 새로운 활력과 발랄한 정신을 가져오게 하신다. 베르뚤리아노 교부의 말씀과 같이『「순혈은 복음의 앗」이다. 무지에 뿌리는데도 그 순혈의 씨여야 하고 묵은 밭에도 순혈에 젖은 새로운 씨가 뿌려져야 새로운 결실을 거두게 된다.』고 했다.
그런데 가톨릭 교리는 사주구령에 있어서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이 있다. 7성사 실시ㆍ계명 준수ㆍ향주 3덕ㆍ4추덕ㆍ완덕생활을 위한 복음 3덕 실천을 강조하고 요구한다. 그러나 순교는 신앙생활의 최종 목적 달성에 있어서 절대적이요 최첩경이요 단연 확고한 방법인 것이다. 아! 순교의 존귀한 가치여! 아 순교자의 위대한 그 장거여! 그때에 의인은 자신 있게 일어서서 그를 협박한 자들과 그가 고통을 받을 때에 멸시한 자들과 맞설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그를 보고 무서워 떨며 그가 뜻밖에 구원받은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그들은 마음이 아파서 후회하고 신음하며 서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 사람은 전에 우리가 비웃고 조롱하던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사는 꼴을 보고 미쳤다고 하였고 그의 죽음도 영예롭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저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 가운데 끼게 되었으며 성도들 가운데 끼게 되었는가? 분명히 우리가 진리에서 빗나간 길을 걸었고 우리에게 정이의 빛이 비치지 않았으며 우리 위에는 태양이 일찍이 떠본 적이 없었구나. 우리는 인적조차 없는 황야를 걸어온 셈이다. 죄와 파멸의 길치고 걸어보지 않은 길이 없었건만 주님의 길은 알지 못하였다. 우리의 오만이 무슨 소용이 있었으며 우리가 자랑하던 재물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가. 그 모든 것은 이제 그림자처럼 사라지고 뜬소문처럼 달아나버렸다.
거센 물결을 헤치고 가는 배와 같이 한 번 지나가면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고 바닷물에는 용골이 지나간 흔적도 없구나.(지혜서 5장 이하) 그런고로 가톨릭은 시복 절차에 있어 다른 이는 반드시 확실한 기적 2ㆍ3건이 있음을 전제조건으로 하지만 순교자에 한해서는 기적이 전제조건이 아니고 순교 사실의 확실성만 있으면 복자위에 올리게 되었다. 이러한 순교자들이 우리나라 교회사를 대부분 차지하였다.「복자 노렌조와 안드레아와 모든 치명자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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