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부터 박교수씨는 오로지 죽순처럼 당년에 자라고 고추나 도마도처럼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유실수 생각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충북 농대로 진학한 그는 육종학을 공부하고 외국 서적을 탐독했다.
농촌진흥청 임목육종연구소에 들어가서부터 그의 본격적 연구는 열을 띠우기 시작해서 아내와 결혼할 무렵에는 미국 데일리 박사 등이 개발한 유대 접목 즉 어린 뿌리 접 붙이기에 혼을 빼앗기다시피 열중하고 있었다.
첫 데이트에서도 그는 엉뚱하기만 했다. 다방에서 그는 아내를 처음 만나자마 이렇게 물었다.
『접목 아세요-』
『네』
『접목 모르는 사람 없겠죠』
『네 알아요』
『그럼 유대 접목이란 말 아세요?』
『잘 모르시겠지요. 접목에는 대목이 있고 그 대목에다 접 붙이는 접 수가 있기 마련이죠! 보통 접목은 이미 목질화되고 뿌리가 무성한 대목에다 접 수를 접 붙이는 것을 말하죠.
그러나 이런 보통 대목 접목은 거부반응을 일으켜 병들기 쉽고 죽기 쉽습니다. 그래서 유대 접목을 개발했죠. 유대 접목은 다릅니다!』
『흠흠』
박교수가 정신없이 말을 쏟아놓자 아내는 가만히 헛기침을 했다.
『앗 미안합니다! 그만 내 얘기만 이렇게 정신없이…』
아내는 그저 빙그레 웃어줬다.
박교수씨는 열적은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인지 제 별명은 칠푼이죠! 모두들 그렇게 부릅니다. 사실 그런지도 모릅니다. 전 살림이라던가 삶을 즐긴다든가 이런 일엔 무관심입니다. 그런 일엔 정말 바보거든요. 그래 지금도 이렇게 미스김을 앉혀 놓구두…』
박교수씨는 갑자기 쑥스럽고 부끄러운 생각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나 아내는 의외로 또렷하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해 줬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뉴우톤도 칠푼이겠군요!』
『네? 뭐 뭐라구요. 뉴우톤이 칠푼이라구요 ?천재 보고 칠푼이라요…』
아내는 웃으면서 말했다.
『계란을 끓는 물에 넣는다는 것이 일에 열중한 나머지 회중시계를 넣은 분이 뉴우톤이 아니었어요?』
『그야 물론 뉴우톤이지만…』
『박선생님이 칠푼이소리 듣는 건 그분과 똑같이 한 가지 일에 열중한 때문일 거예요. 부끄럽긴 커녕 자랑스런 별명이잖아요?』
바로 그순간 박교수씨는 결심을 했다.
『이 여자다. 바로 내가 찾던 여자는!』
얼마 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정신적 지주를 잃고 방황하던 때 박교수씨는 산새 소리가 그윽한 나무 숲 속에서 아내에게 청혼을 했다.
『곁에서 도와주지 않겠오? 끓는 물에 계란 대신 시계나 돌맹이를 넣어도 얼른 바꿔 넣어주는 그런 내조자가 나에겐 필요합니다』
아내는 대답 대신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줬다.
이렇게 해서 박교수씨는 외할머니 대신 아내를 정신적 지주로 삼고 또 연구에 몰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 후 부부는 말로는 행동키 어려운 숱한 고생을 했다.
실험용 밤만 해도 오십 가마는 넘었다. 그 밤을 삶아 먹으며 연구를 계속했다.
마침내 피를 토하고 쓰러진 박교수씨 의사의 진단은 끔찍스런 것이었다.
『객혈이 아니고 토혈입니다. 농약 묻은 밤을 너무 먹은 탓입니다』
그러나 병상에 누워서도 그는 쉴 수가 없었다. 밤에 어린 뿌리에다 접을 붙인다. 누구나 비웃는 일이지만 그는 고정관념을 타파해 보고 싶었다. 수직 사고로는 도저히 해결할 길이 없어서 수평 사고로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래 멀어서 안 되면 잡아 다려보자. 과격적인 생각이 아니구서야 어찌 죽순처럼 자라고 고추처럼 열리는 밤을 얻을 수 있으랴?』
그러던 어느날 그가 우연히 두 다리를 들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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