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민이었다.
그는 금테 안경의 태도에 어울리지 않게 오징어 다리를 한 손에 잡고 질겅질겅 씹어대고 있었다.
점심식사를 하던 형화는 물론 임이라는 사람조차도 한동안 놀라와 말을 잃고 있었다.
경민은 말을 하기 위하여 씹던 오징어 다리를 힘있게 잡아당기면서 이로 용케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풍경 좋군
하면서 가까이에 있는 형화의 물컵을 집어들고 벌컥벌컥 들이마시는 것이었다.
형화는 그제서야 아침의 일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핏 햇빛에 번쩍이던 경민의 금테 안경과 여기에 범벅 되었던 붉고 누런 형상의 알 수 없는 모습을 기억했다.
어깨가 뜨뜻해져 온다.
형화는 놀라움을 떨구고 우선 어깨에 얹은 경민의 손부터 뿌리쳤다.
임도 동시에 놀라움에서 벗어나는 모양이었다.
임이 자세를 고치고 우선 공격적인 눈빛으로 경민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경민은 태연스레 당신 뭐야 하고 말을 던지는 것이었다.
무어라고 대답할 줄 모르는 임은 비웃음을 나타내보이기라도 하는 듯이 경민을 아래 위로 훑어 보았다.
아무렇게나 접어 신은 구두에 헐어빠진 청바지를 입고 T셔츠 하나 걸쳐 입은 경민을 어느 누가 그 엄청난 부잣집에서 귀염둥이로 자라난 사람이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임은 그러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양복 저고리를 쓸데없이 가다듬어 입더니、 형화씨 우리 식사 마저 합시다고 숫갈을 들었다.
-이렇게 야박한 세상 인심이 있나
경민은 형화의 옆자리에 벌썩 주저앉더니 형화가 막던 수저를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옆자리에 앉은 경민에게서 독한 소주 냄새가 풍겨왔다.
일이 이쯤 되고 보니 서로들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게 되고 말았다.
임은 모처럼 형화에게서 관심을 끌어보려고 작정한 날엔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느닷없는 침입자를 격퇴시켜야만 인정 받게 될 형편을 아는 것 같았으나 결코 그런 일에 뛰어들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형화로서는 처음 만나는 남자이긴 해도 손수건에 향수까지 뿌린 노력을 위해서라도 정중하게 대해 주어야 할 일이었는데 경민이가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나오니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임은 들었던 숫갈을 내려놓았다.
-우리 이만 갑시다.
형화에게 동의라도 구하는 듯 표정을 짓더니 임은 자리를 일어섰다.
형화는 어쩔 줄 모르다가 얼결에 따라 일어섰다.
-아、그거 생각 잘 했소. 안녕히 가시오.
경민은 밥을 한 입 가득 넣고 한 손으로 어서 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형화는 일어서서 의자를 물리었다.
-허지만 참새는 좀 앉지 그래.
그러더니 형화의 손을 잡아 쥐고 힘있게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자 어서 잘 가시오 노형.
경민이 크게 소리쳤다.
임은 불쾌한 표정으로 출입문을 통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불쾌해요.
남의 밥을 거의 다 먹어가는 경민이가 형화를 돌아보았다.
-아침 일을 보복하려고 했어. 그렇지만 도중에 무슨 일을 하다가 생각이 달라졌지만.
밥을 먹어서 입 안이 씻어진 까닭인지 술 냄새는 어느 정도 사라져 있었다.
-크윽 잘 먹었다. 커피나 한 잔 더 마시고 싶군.
한동안 아무 말이 없던 경민은 커피가 나왔을 때에야 입을 열었다.
-아침에 한강 다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나 알고 출근했어. 참새?
-무슨 일이라니.
-사람이 쳐죽은 것 말이야.
-그랬다더군.
-태연하시군.그래 속상한 심정도 없었나.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허긴 그렇지.
형화는 느닷없는 사태에 커피 맛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말이라고 대답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아침엔 화가 나서 형화 태우고 간 차를 쫓아 달려가서 쿵 박아 버릴려고까지 했었지. 그래서 급히 돌아서려는데 사람이 치인 모습을 발견했어. 마침 교통순경과 기중기 운전사가 죽은 사람을 꺼내서 병원으로 싣고 가려 하고 있더군. 그런데 차마다 사람들이 꼭꼭 들어차 있으니 태울 데가 없어 하는 거야.
형화는 회사에 늦을까봐 안달을 하던 시각을 돌이켜보았다. 그래 맞다. 차가 하나도 없었을 거야.
-나 같은 놈팽이 녀석이 할 짓이 있어 그런 짓꺼리나 해보는 거지. 나는 내 차를 그 옆에 들이대고 실어 날랐지. 햐 거 노란 이중선 가운데를 헤드라이트 켜고 달리니까 기분 좋더라.
-그래서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어요
-어떻게 되긴. 시체 안치실로 직행했지. 차 안에서 풍기던 피비린내도 대단하더군. 요 참새야、그래서 하도 경황이 없어 너 혼내주겠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소주 한 잔 했다.
-그 사람은 박살이 났다면서요?
-박살? 용케 대강은 아는군. 아까、그 차 주인 녀석이 그러든? 박살은 커녕 오징어야 오징어 이히힛.
경민은 혼자 웃어대더니 주머니에서 구운 오징어를 집어들었다.
-그 녀석 꼭 이 신세가 되겠더군.
-……
-그 녀석 신세 생각이 나서 하나 사들었지. 헤이 참새 오징어 구우면 어떻게 되는지 아니?
오징어는 돌돌 말려 있었다.
-불에 올라가면 처음엔 이리저리 요동을 하지. 그러다가 삥하고 소리가 나면서 오징어 껍질이 터진단 말이야. 그리고 한 번 급히 휘어지다가 이렇게 말려들지.
-……
-와하핫 그 녀석….
그러더니 경민은 주위 사람들도 아랑곳하지 않고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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