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민은 안경을 벗어 테이블에 내려놓더니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엉엉 울어댔다.
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나 조용히 커피를 즐기고 있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소란해진 방향으로 일제히 시선을 보냈다.
형화는 그 시선들 속에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창피스러워졌지만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으니 어쩔 줄을 몰랐다.
더구나 경민이라는 사내는 어려서부터 부잣집 외아들로 어려움 없이 자라와 무엇이든 자기가 하고픈 일이란 하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므로 울음을 달랜다고 그쳐질 일이 아니어서 더욱 낭패스러웠다.
그는 서른 살에 가깝도록 아직껏 자가용이나 굴리면서 보기 좋은 옷이나 여자를 고르기에 재미를 들이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래도 그의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 에미의 정도 모르고 자란 불쌍한 자식으로 여겨 가끔씩 야단을 치기는 했으나 그가 필요로 하는 무엇이든 충족시켜 주고 있었다.
그러니 경민의 생활은 매일을 그 노릇만으로 계속되는 것이었다.
그러한 생활이 벌써 십여 년에 가깝다는 것을 형화는 이미 알고 있었다.
경민은 자신이 살아온 생활을 만나는 여자에게마다 자랑인 양 떠벌이는 모양이었다.
형화가 경민의 생활을 알고 있는 것은 그렇게 당연한 일이었다.
경민의 어머니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버린 것은 경민의 기억이 아직 도달하지 못하는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었다.
경민의 누이는 그때 국민학교 5학년이었다.
워낙 착하고 말이 없었던 그녀는 어머니의 가출에 충격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내내 아무 말 없이 경민이 어머니 역할을 해내기 시작했다.
경민은 아무 것도 모르고 개구장이로 성장하였다.
뜰 안의 흙을 장난감에다 실어 날라 방안에 가득 갖다 부어도 누이는 말없이 모두 치워주곤 했다.
날이 갈수록 경민의 아버지는 사업이 번창하였고 하루 이틀 밖에서 주무시고 들어오시는 날이 늘어갔으며 이럴 때마다 경민 누이의 배려는 더욱 지극해지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일본에 출장을 가셔서 한 달씩이나 집에 안 계신 날도 있었다.
아버지는 항상 전화를 걸어오고 안부를 전했지만 경민이 사춘기에 이르렀을 무렵에는 일본에 거의 일 년을 눌러앉으실 때도 있었다.
혼수감을 장만하면서 시집 갈 준비를 하고 있던 경민의 누이가 별안간 자살을 한 것도 이때의 일이었다.
당시 집안에는 일하는 사람들뿐이어서 경민은 어쩔 줄을 몰랐고 그저 슬프기만 해서 매일 울며 지냈다.
아버지의 비서가 전화를 했는지 그는 이틀 후에 일본에서 집까지 달려왔다. 그리고 이미 부패한 냄새가 조금씩 풍기기 시작하는 누이의 관 앞에서 아연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관을 내갔다. 경민은 통통 부은 눈으로 아버지를 노려보며 묘지는 어느 곳으로 정했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묘지는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묘지도 없이 누이를 내다가 어쩔 셈이냐고 따지고 들었다. 아버지는 한참을 구두 끝만 보고 계시더니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는 묻지 않고 화장을 하는 법이라고 나직이 대답하는 것이었다.
경민은 본능적인 놀라움과 거부반응으로 그건 안 된다고 소리소리 지르며 누이의 관을 따라갔지만 이미 장의차는 누이를 싣고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기통으로 시커먼 연기를 한 뭉치 내뿜더니 급히 달려나가는 것이었다.
경민은 집안으로 뛰어들어와 아버지에게 장소를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천천히 걷기만 했다. 경민은 몇 번이나 졸라댔다.
아버지의 검은 차 앞에 다다라서야 너는 갈 곳이 못 되니 집에서 쉬도록 하여라 하고 지시하더니 차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경민은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러나 아버지의 태도는 여전할 뿐이었다.
경민은 이때 미친 사람처럼 차에 매달렸지만 아버지의 차도 떠나버리는 것이었다.
경민은 최후의 수단으로 뒤쫓아가 자동자의 뒷밤바에 매달려버렸다.
몇십 미터를 달리고 난 뒤에 차는 정지했다.
차에 매달려 끌려가던 경민의 다리를 운전사가 백미러로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경민의 무릎에서는 약간의 피가 흘렀다.
아버지는 급히 차를 병원으로 돌려 경민의 다리를 치료했고 그 다음 어쩔 수 없이 경민과 동행했다.
시간을 지체하였던 까닭인지 화장터에 도달했을 때 누이는 벌써 불 속에 들어가 화장쟁이들이 두터운 철문을 닫아버리고 만 뒤였다.
경민은 그때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였으므로 누구도 그의 행동을 저지할 수 없었다.
경민이 철문 가운데 동그랗게 뚫린 구멍 사이로 안을 들여다 보았을 때는 누이가 어느 정도 가열이 되어 있었다.
그러더니 별안간 벌떡 일어나 앉는 것이었다.
경민은 죽은 누이가 자리를 반기려는 것인 줄 알고 경악하며 놀랐다.
그러다니 잠시 후 누이는 다시 쿵 누워버리는 것이었다.
경민이 일꾼들과 아버지의 완력에 의해 끌려간 것은 이것과 거의 동시의 일이었다.
형화는 엉엉 소리내어 울고 있는 경민을 보며 경민의 누이를 생각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금테 안경과 먹다 남은 오징어를 구우면 동그랗게 말려든다구. 마치 살아있는 사람같이.
형화는 경민이 측은해져왔다.
그러나 그가 늘어놓고 다닌 그 못한 행각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인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형화가 그 그물에 걸려들었던 것은 부끄러운 그 이상의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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