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교구 통신문은 10월 13일자에서 대구에서 거행된「루르드」성모동굴의 낙성식을 가리켜 한국에서 일찍이 보지못한 가장 아름다운 종교예식의 하나였다고 특기하고 있다.
이 낙성식을 위하여 대구교구의 모든 선교사와 한국인 신부들을 위시하여 각 지방에서 모여든 수많은 교우들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광장에 밀집하였다. 날씨의 혜택마저 받은 예식은 여러면에서 아주 아름다웠다. 이 동굴의 낙성과 함께 앞으로의 계속적인 순례를 다짐하면서 새 교구는 원죄없이 잉태하신 성모님께 각별한 경의와 감사를 표시하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7년전 초대교구장이 취임하면서 서약하에 애원한 청원을 성모님께서 들어주셨기 때문이다. 사실 새 교구가 신학교 주교관 피정의 집 수녀원 등의 기본시설을 완수할 수 있은 것은 하나의 기적일 수 밖에 없었다.
금년에도 외교인 개종의 수는 여전히 감소의 경향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기서는 이미 지적한 인적ㆍ물적 자원의 결핍 외에도 다른 원인들이 있었다. 개화요 문명이란 새로운 사조는 물가를 오르게하고 유물주의의 정신을 키워줌으로써 가난한 이는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부자에겐 사치생활을 자극 하였다. 일본인과 같은 수준의 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대구 주교좌 본당 김(Robert) 신부는 당시 일본인이 한국에 끼친 나쁜 표양을 이렇게 말한다.
『대인영세자는 작년보다 약간 줄었는데 그 이유는 해마다 늘어나는 일본인의 이민 때문이다. 그들은 대부분이 소위 천황숭배 밖에는 다른 종교를 모르는 회의주의자들로서 문명이 도덕과 관련된 것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활관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지상적 향락보다 더높은 이상을 추구하게 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생활의 새 조건에서 오는 영향과 위험은 젊은이들에게 더욱 컸고 도시일수록 더했다. 산업의 발달과 생활비의 앙등으로 인한 경제생활의 변동은 젊은 남녀를 선두로 많은 부녀자와 미성년자마저 다투어 공장으로 진출케 하였다. 이것은 종교적 무관심을 낳게하여 크리스찬 생활을 유지하거나 발전시키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를 못했다. 냉담자의 수가 늘어나는 슬픈현상이 뒤따랐다. 물론 그들이 아주 신앙을 잃거나 종교적 실천마저 근본적으로 단념하게 한 것은 아니나 그들의 지나친 물질적 몰두는 성사를 받을 기회를 피하고 성당의 길을 멀게하고 회개의 날을 지연시키기에는 아주 충분한 것이었다. 우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인간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걱정이다.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에 가난한 자는 행복차라는 성경말씀과 같이 그들은 즐겨 하늘을 쳐다보며 살아 나가지만 그러나 가난이 비참의 선에 이르게 되면 그러한 몸짓마저 어려울만큼 그들의 몸이 지상으로 굽게 된다.
『종교에 불리한 새로운 사조는 모두 신문과 학교에서 온다』고 당시의 한 선교사가 한탄한 것과 같이 사실 이 무렵의 학교교육은 포교의 발전을 가로막는 큰 장애요인이 되었다. 특히 학생들은 새로운 사상에 아주 민감하여 쉽게 영향을 받아 곧 종교를 적대시하게 되었다. 이에 관하여 한 한국인 신부는 말하기를『공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거기서 공부보다는 일하지 않더라도 잘 살수있는 방법을 배울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거기서 비판적이고 합리적이고 프로테스탄적인 정신만을 배운다.
또한 그들은 다 벼슬을 희망하고 있는데 후에 그들이 얻는 벼슬이란 겨우 순사 정도이다. 그러면 종교의 원수가 되고만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와같은 속화를 미연에 대비하려는 교회 학교의 종교교육도 점점 실효를 거두지 못하게 된다. 교구통신에 나타난 실정은 이러하다.『특히 우리 청년들은 큰 걱정거리다. 선교사들의 희생으로 창설되고 유지되는 학교도 이제 안심할수 있는 사업은 아니다. 그것을 창설할 때의 우리의 목적은 두말할것 없이 아동들에게 종교교육을 실시하려는데 있었다. 그런데 교육에 관한 소위 중립법은 한국에서도 선포되었다. 수업시간에 종교를 가르치는 것을 금할뿐더러 수업시간이 아니더라도 학교내에서는 일체 금한다는 것이다. 이 법령은 이미 5년전에 선포되긴 하였으나 그 엄격한 시행은 10년의 여유를 두고 있으므로 다행히 우리는 아직 5년간의 관용을 이용하여 학교에서 교리와 기구문을 계속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가 지나면 어떻게 할것인가』
이와 같이 교육사업과 관련하여 선포된 이 법령은 교회 학교의 애당초의 목적달성을 거의 무력하게 만들었다. 이 법의 존재이유는「교육은 종교에서도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근본신조에 의거한 것이다. 일본의 입법자들은 교육에서 종교를 절대적으로 분리시켜야만 소기의 진보를 쟁취할수 있다고 확신한 때문이다. 신사참배의 문제는 이때에 이르러 처음으로 일본 가톨릭 신자의 반대에 부딪쳤는데 그 사건의 전말을 교구통신은 이렇게 전한다.
『얼마전부터 일본에서 학생들이 신사에 참배하도록 당국의 지시가 점차 강화되었다. 당국은 그것이 단순한 애국적 의식이며 순수한 시민적 예식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신사에서의 예식은 종교적 예식의 모든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므로 그러한 종교적 성격이 제거되지 않는 한 신자들을 근신시켜야 할것이다. 최근에「나가사끼」교구의 천주교 학생들이 신사참배를 거절했다. 그래서 체포되어 동경으로 이송되었다. 어떻게 된 것인가』
마침내 제1차대전은 연맹군의 승리로 끝났고 이를 감사하는 예식이 종현대성당에서 거행되었다.
『11월17일 대성당에서 오후 3시에 휴전과 연맹군의 승리를 감사하는(TE DEUM)예식을 가졌다. 폭풍우에도 불구하고 예식은 성공적이었다. 연맹국의 모든 외교사절들과 일본 당국의 고관들이 참석했다』성당내진에 자리한 신학생들의 위엄있는 모습은 전체와 아주 좋은 조화를 이루었고 음악도 참으로 종교적으로 애국적이었다』이렇게 우리의 선교사들은 승리자로서 삶의 행복을 새삼 느끼면서 승리를 주신 분에게 감사해 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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