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예수께 물었다.『사람이 잘못했을 때는 몇번씩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번까지 용서해주면 됩니까?』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일곱번에 일흔번까지도 용서해주라』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풍습으로 같은 숫자를 거듭했을때는「무한」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때문에 일곱번의 일흔번은「무한히 용서하라」는 뜻이다. 또 성경에는 여러번 여러곳에서「용서해주라」는 말이 나온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가장 좋다는 주의 기도문을 보더라도『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되어있다.
마지막날 십자가 위에서 자기 자신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사람들을 위해 예수께서는 이렇게 기도했다.『성부여, 저 사람들을 용서하소서』또 간음죄를 짓고 돌로 맞아 죽을 여인앞에서 돌로 치려는 사람들을 돌아보면서『만일 너희중에 죄없는 사람이 있거든 먼저 돌을 던져라』하셨다. 이에 늙은 사람으로 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돌을 놓고 달아나 버렸다. 완전하지 못한 인간의 행동 전부가 완전하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불완전한 인간은 그것을 핑계삼아 일부러 잘못해서는 안될것이다. 그러나 남의 잘못을 탓하고 싶으면 먼저 제 잘못을 탓해야 할것이다. 왜냐하면 남이 잘못한 만큼 아니면 더 잘못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것보다 더 무서운 말은『네가 남을 판단하는 바로 그 척도(尺度)로써 너도 판단받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지금 하느님 심판 대전에 내가 심판받는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남에게 가혹했던 그만큼 가혹하게 하느님은 나를 심판할것이 아니냐? 그러면 죄많은 우리 인간이 얼마나 너그러워야 할는지 모르겠다. 흔히 하는말로『나는 흑백을 가린다』면서 자신은 가장 의로운 사람으로 자처하는 바로 그 사람이 가장 엄하게 심판받을 것이다.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나 이 심판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을것이다.
더구나 자기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가장 교묘한 방법으로 잘못을 남에게 뒤집어 씌워놓고『저 놈 죽일 놈』이라고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악하게 심판하도록 한다면 과연 하느님께서 그를 어떻게 처리하시겠는가. 무서운 일이다. 흔히보면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고 자신을 변명하는 사람일수록 잘못이 많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불순명해놓고 잘못의 탓이 친구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람들까지도 용서해 줘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너그럽지 않으실것이 아니냐.『계곡은 계곡을 부르고 악은 더 큰 악을 낳는다』라는 성경말씀을 상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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