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물상자를 든채 묵묵히 그 자리를 나왔다. 저녁 여덟시에 있을 학예발표회를 보러갈 마음이 사그러졌다. 나는 나의 일칸으로 들어서기 위해-나의 일칸으로 들어가려면 김군의 일칸으로 거쳐서 가겠끔 되었다-김군의 일칸으로 들어섰다.
『박형 왜 그랬소?』
뻔하다. 자식은 회장님께 나의 소행을 비난했을 것이다.
나는 자식을 흘깃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견습공들이 일제히 쳐다봤다. 나의 겨드랑이에 든 선물상자를.
나는 칸막이의 문짝을 열었다. 아주 세차게 열었다. 김군은 더 관계치 않는다. 나는 나의 일칸으로 들어섰다. 퇴근시간까진 작업을 해야 했다.
선물상자를 대패대 위에 던져버렸다.
명구가 싱글벙글하며 들어온다. 선물상자에 든 게 초콜렛이나 비스켓이라고 생각된 그였다.
『형님 주인님. 성당에서 만났죠?』
나는 그사이 공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구나 생각되었다.
『그래 회장님께서 좀전에 뭐라고 하시든?』
명구는 거침없이 대답한다.
『아무런 말한마디 없이 마술가마를 꺼내갔다고 화를 내셨어요』
『그래서 뭐라고들 했니?』
명구는 한쪽 눈을 찡긋한다. 자식은 꿍꿍이 속을 가질때마다 이랬다.
『형님 입을 즐겁게』
나를 끌려더는척 했다.
『그래 얘기해줘』
『우리 살람 밑천 없어해』
자식은 선물상자를 냉큼 집어든다.
선물상자부터 먼저 끌러서 먹고 얘기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재빨리 명구의 뒷덜미를 나꾸었다
『자식 버릇없게 굴어 얌전히 놓아』
명구는 찔끔 놀라면서 놓는다.
『나도 말해주지 않겠어요』
명구는 토라졌다. 허기져 있었으므로 박형한테 섭섭함을 금치못했다. 욕심장이라고 욕지거리를 해주고 싶었다.
『형님은 마술가마를 만들어주고 받은 선물인데 뭘 그렇게 혼자만 독차지 하는거요』
나는 이 말을 듣고 그만 앗찔해졌다. 직공들에게 얼마나 매물찬 놈으로 보였을까 싶어졌다. 선물의 내용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가 없었다.
나는 비로소 명구에게 말했다.
『명구야 모두들 내 일칸으로 다오라고 그래』
명구는 번개같다. 칸막이 문짝을 휘딱열고 열칸, 그리고 칠칸에까지 들리도록 멧시지를 전한다.
『박형이 다 오래요. 선물 받아온걸 나눠 먹잡니다. 캄온!캄호은!』
명구의 우렁찬소리는 곧 반응을 일으켰다. 시끄럽던 연장소리가 뚝 그치는가 싶더니 우당탕 문짝 여닫히는 소리가 나면서 직공들이 -기실 나까지 도합여섯명이지만- 나의 일칸으로 뛰어들었다.
명구는 재빨리 일칸 구석에있는 테이블을 한가운데로 들어놓으며
『형님, 선물상자 여기에 풀어요』하고 말했다.
나는 선물상자를 대패대 위에 풀으려던 참이었다.
직공들은 테이블을 중심으로 빙둘러섰다. 나는 테이블위에 선물상자를 올려놓고 포장을 끌렀다.
모두 눈길이 기대에 벅차서 껌뻑거렸다. 군침을 삼키는 소리도 났다. 다꿀러진 포장속에서 나온것은 와이샤스통 같은 것이었다.
김군은 보나마나란듯이 옆칸으로 가버렸다. 나는 뚜껑을 열었다.
『에이구 김 팍샜다』
명구가 실망을 부르짖는다. 쒜타였다. 직공들은 명구에게 꿀밤을 먹이면서『자식 똑똑히 알고 전해얄거 아냐』제각기 일칸으로 가버린다. 명구는 쳇소리를 몇번이나 뇌이며
『형님땜에 괜히 나만 돌놈됐어』하고 내뱉고는 문짝을 발로 탕 차고 나갔다. 나는 잠시동안 멍청이 서있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옆칸에서는 다시 대패질 망치질 소리가 나고 있었다.
선물은 결국 내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끼여들 수 없는 나만의 것이었다. 겨울의 긴 추위를 이겨나가려면 어차피 하나 사 입어야할 쉐타였다. 나의 적은 월급에서 무척이나 궁리해왔던 쉐타. 그 쉐타가 선물이 되어 내게 찾아온 것이다. 직공들과 어울려 잠시 먹어치워버릴 음식보다 얼마나 영구적인 선물인가. 그런데 왜 나는 선물의 내용을 얼른 몰랐을까.
나는 이윽고 쉐타를 집어 들었다. 쉐타가 주는 따스한 촉감이 손에 느껴졌다. 쉐타를 뺨에 갖다댔다. 촉감은 뺨에도 느껴졌다. 따스했다. 무척이나 따스했다. 일칸의 냉기가 쉐타로 인해 풀려버릴것만 같았다. 유치원 학예발표회를 구경갈 마음도 내켰다.
나는 어느새 작업복을 벗어제끼고 쉐타를 들쳐입었다. 그리고는 다른 어느날보다 열심히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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