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세탁소엘 들렸다. 어제 맡긴 바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발표회의 구경만 아니었다면 세탁같은건 별볼일 없는 것이었다.
세탁소 주인은 잘 다림질된 바지를 신문지에 싸주었다. 나는 시간을 물었다. 아직 팔뚝시계를 장만하지 못한 나였다. 세탁소 주인은 시계를 들여다 본 뒤
『일곱시 십분이오』하고 말했다.
여덟시까진 아직 몇십분 남은 셈이다. 나는 세탁비를 치루고 바지를 들고 나왔다.
이발소 앞을 지나다가 나는 문득 이렇게 중얼거렸다.
『바지도 세탁했는데 이발을 안해서 될까』
이발소엔 손님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손으로 머리를 만져봤다. 푸스르했다. 턱도 만져봤다. 손끝에 수염이 까실까실 만져졌다. 이발을 해야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나는 이발소의 출입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아이구 어서오세요』
너무 반갑단다. 요며칠 사이에 무척이나 손님이 귀했던 모양이다.
나는 이발사가 권하는대로 의자에 앉았다. 가운을 목에 둘러준다. 물수건을 버럭버럭 짜오며 머리를 추긴다. 그런 다음 빗과 가위를 들이댄다.
『가르마 타드릴까요?』
나는 얼른 대답하지를 못했다. 가르바를 타야 더 보기좋을지 아니면 그냥 두는게 나을지
『저어』
『말씀해보세요』
『가르마 타주세요』
나는 가르마를 타는게 좋겠다 싶었다. 이발사는 왼쪽 이마위로 가르마를 탔다. 가위질 소리가 리드미칼하게 들리며 머리카락이 가운위로 추풍낙엽이 된다. 콧잔등 눈썹위에도 머리카락이 떨어졌다.
가위질은 거듭되었다. 머리를 깎음으로 해서 나의 두상이 축소된듯 했다.
잠시후 가위질을 끝낸 이발사가 솔로 얼굴과 목 언저리 뒤통수를 털어주고 가운을 걷어갔다.
이번엔 여 면도사가 가죽혁띠에 면도날을 쓱쓱 문질러 왔다. 그녀의 입에 종이가 한장 물렸는데 그것을 내 어깨위에 얹었다. 그녀는 비누액을 나의 귓 뒤로해서 바르고 면도날을 들이댔다.
곧 뒷 면도는 끝났다.
나는 물었다.
『지금 몇시에요?』
여 면도사는 팔시계를 들여다보며
『일곱시 사십분이예요』
『예엣!』
시간이 금새 그렇게나 흘렀을 줄은 몰랐다. 여 면도사는 느긋하게 등받이의 조절대를 낮춘다. 나의 상체도 높여졌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이십분.
나는 이십분동안 저녁식사도 해야하고 옷단장도 해야한다. 그러나 그렇게 될것 같지가 않다. 아니 이발도 시간안에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여덟시를 지각한다 쳐보자 세탁해온 바지 그리고 이발한 머리가 무슨 소용일텐가. 나는 점차적으로 조금해지다가 그만 폭발해 버렸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일분내로 끝내줘요』
그녀는 어머 소리를 낸다.
『그렇게 바쁘시면 면도를 하시잖고』
나는 아무대꾸도 못하고 다시몸을 눞혔다.
그녀는 턱과 코밑으로 뜨거운 물수건을 얹었다.
『으헛 뜨거』
그녀는 도로 걷는다.
『그냥 해줘요』
그녀는 나의말대로 그냥 비누액을 칠했다.
나의 얼굴이 까슬까슬 하도록 초조해졌다. 이마에서부터 칼질하기 시작하는 여사의 손놀림이 사뭇 빠르다. 칼끝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살갖위를 미끄러져 내린다. 이마에서부터 콧잔등ㆍ뺨 밑 턱.
그녀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다.
키쓰라는 글자가 퍼뜩 떠올랐다.
칼 끝은 턱에서 목으로 내려갔다. 간지럽다. 으해해 웃고싶다.
『칼에 해여요 가만있어요』
나는 목에 근육을 세웠다. 간지럽긴 마찬가지다.
『그만 그만』
그녀의 칼 쥔 손을 밀쳤다.
『점잖은 분이 왜 이래요』
그녀는 제딴엔 놀랐다고 말했다.
『미안해요. 나는 간지럼을 좀 타요』
나는 사과했다.
그녀는 다시 나의 상채를 눕히려 한다.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은 말끔하게 보였다.
『다 됐잖아요』
그녀는 별일이란 듯이 말한다.
『끝 손질을 해야돼요』
나는 그녀에게 언성을 높혀 말했다
『시간 없어요』
이번엔 머리씻는 아이의 인도로 세면대앞에 앉혀졌다. 그는 아직 머리씻는것 밖에 못하는 모양이었다.
『얘, 이십초내로 끝내주면 팁을 좀 주마』
나는 아이가 상당히 시간을 끌것 같았다. 아이는 팁이라는걸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는 물조루를 들고 달음박질을 친다.
이발소 한복판에 연탄 난로가 있고 그 위에 물 데우는 솥이 얹혔다. 그는 재빨리 솥뚜껑을 열고 조루를 풍덩넣어 왠만큼 물을 떠냈다. 김이 슬슬 솟아오르는게 형광불빛에 보였다. 그는 물조루를 찬물통에 넣어 찬물과 뜨거운물을 혼합해서 가장 알맞는 온도의 물을 만들었다.
나는 그가 서두르는게 그렇게 재빠르지 못해서 안타까왔다.
나는 머리를 낮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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