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물을 머리에 부으며 비누를 벅벅 갈아댄다. 그런 다음 두 손으로 싹싹 문지른다.
나는 머리카락사이로 헤집고 들어온 그의 손가락이 제법 빠르게 긁어대는것 같아 시원해졌다.
그는 호흡이 예상외로 가빴다. 손님이 너무 재촉하는 통에 정신못차릴 지경이었다. 시간은 가만있질 않는다.
『얘 그만둬 됐어됐어』
나는 머리가 잘씻겨지는게 달갑지 않았다. 아이는 휴 숨을 내뿜으며 조루의 물을 머리에 쏟았다. 그리고는 세면대에 물을 부어주며 세수를 하란다. 나는 물을 두어번 움켜 얼굴을 씻고는 주머니에 찔러준 타올로 딱았다. 머리끝에 맺힌 물방울이 툭툭 어깨위로 떨어졌다. 차가웠다. 나는 의자에 다시 앉혀졌다. 이발사가 타올로 머리의 물기를 털었다. 물기가 모두 가시자 얼굴에 크림을 발라주었다.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은 예뻐보였다. 이 정도면 됐으리라.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발사가 붙들어 앉히려 한다.
『드라이를 해서 머리를 붙여야죠』
나는 한마디로 잘랐다.
『시간 없습니다. 참 지금 시간 어떻게 됐어요?』
이발사는 팔목시계를 들여다보고
『일곱시 오십분이오』
『이거 야단났군』
나는 발을 동동 굴리며 이발비를 치루고 뛰어나왔다. 아이에게 팁의 약속을 어긴게 나중에 생각났다.
나는 집에 들어오자 우선 거울앞에서 바지를 입었다. 쉐타는 미리 입었으므로 별볼일 없어졌다.
어머님이 저녁상을 차려왔다.
『얘야 오늘은 웬일이냐?』
어머님이 눈이 휘둥그레셔서물었다. 집안식구래야 어머님과 나뿐이었다. 아버님은 6ㆍ25 전선에서 돌아가셨다.
『극장을 좀 다녀오려구요. 제가 산호조각을 새기면서 얘기했던 학예발표회를 저녁여덟시에 하거든요. 아마 지금쯤 시작했을꺼예요. 어머님 구경하시겠어요』
나는 차근히 얘기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는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너나 갖다오렴. 난 집을 지켜야지. 그리고 요즘은 일감이 밀렸어』
방 두칸과 부엌 한칸으로 구성된 스레이트집. 어머님은 항상 집에서 삯바느질을 했으며 요즈음은 결혼절기라 일거리가 많았다.
나는 삽시간에 밥그릇을 비우고 밥상을 물렸다.
『그렇게 마구 삼켜먹고 배탈이나 나면 어쩔려구 그러냐?』
『염려마세요. 소화도 빨리되겠죠 뭐』
이러는 사이 시간은 또 흘렀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방에서 뛰쳐나왔다.
댓돌위에 놓인 구두는 아침에 닦아놓은 것이었다. 그냥 신기만 하면 되었다
이 구두는 지난 월급날 사 신은 기성화였다. 나는 발이 커진후를 염려해서 좀 헐렁한걸 골랐는데 한 며칠신은 후엔 후회막급이었다.
나는 구두끈을 꼭 졸라맸다. 발등은 단단해졌다. 그러나 발뒤꿈치는 구두 뒷축에서 1센티쯤 떴다. 발가락을 꿈지럭거려서 발 전체를 뒤로 물렸다. 헐렁하기가 조금 덜했다.
이젠 출발.
『어머님 다녀오겠어요』집밖에 나서자 엄동설한의 찬바람이 코에 씽하다. 이까짓게 신경쓰일리는 없었다. 지금쯤 오르고 있을 무대의 막.
나는 다른 종목은 못봐도 괜찮았다. 다만 마술가마의 등장만큼은 한사코 보고 싶었다. 그래서 관객이 얼마큼 감격하는지 그게 알고 싶었다.
나는 뛰기 시작했다. 극장까지의 거리가 1키로쯤은 되었다. 나는 이거리를 일분만에 돌파할 수는 없는것이다.
골목길에서 한길로 빠져나오자 상점의 불빛들이 현란하게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 불 밑에 강한 자극을-왜냐하면 시간관념을 절감케 했으므로-받으며 흡사 육상선수처럼 달렸다. 정규코스를 일초라도 단축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 나는 이런 자신감에 넘쳤는지도 몰랐다.
휙휙하고 귓전에 바람소리가 나고 행인들이 의아해하며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 없었다.
극장은 C읍의 한복판에 있었다. C읍의 단하나뿐인 극장이므로 프로가 바뀔때마다 관객들이 많았다. 아마 지금도 그러하리라. 극장이 가까와졌다. 행인들이 길거리에 훨씬 붐비고있다.
나의 지점에서 전방 2백m 앞서가고 있는 한 무리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교우들인것 같이 여겨졌다. 그들은 걸어가고 있었으므로 나는 곧 그들과 가까운 거리가 되었다.
바로 청년회원들이었다. 성당의 청년들은 모두 청년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은 회원이었다.
저마다 직장에 나가고있어 주일이 아니면 만나기 힘들었다.
나는 소리쳤다.
『어이 보니파시오! 가브리엘!』
나는 가장 친근한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그들과는 영세동기였고 동갑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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