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근본적인 고적감은 인간을 위협하는 것이다. 우리가 고독감과 맞 부닥치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독과 맞부닥치는 것을 어떻게하든 피하고자 온갖 일을 하며 자기자신 고적감에 빠지지 않기위해 온갖 교묘한 수단을 강구하기도 한다. 현대문화를 자세히보면 인간이 겪는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고통을 막을 수 있도록 매우 궤변적으로 되어있다. 마치 죽은 자를 살아있는 것처럼 묻어버리듯 인간은 인간의 고통을 현실적인 것이 아닌 것처럼 묻어버린다.
현대인은 너무나 인간의 고통을 없애주는 이런 문화에 마비되어있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자기를 오히려 괴롭히는 물건이나 사람이 없을 때 당황할 정도가 되었다.
자기가 무엇이든 완성해야 할 일거리가 없을 때 오히려 당황하며 방문할 사람도 방문 올 사람도 없을 때 이런 상황이 주는 고독감을 당해내지 못해 몸부림치며 읽을 책도 없고 구경할 텔레비젼도 없고 음악을 듣고 싶어도 전축도 레크드도 없을 때 완전히「나」혼자 있을 때 사람들은 이 근본적인 고독감을 경험할까봐서 두려워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바쁜일을 찾게되고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놀이를 찾아나선다. 결국 고독과 맞부닥치지 못하고 고독을 피해서 도망친다.
참으로 인간이 고독한 상태를 두려워하고 이것을 피하고자 하면 결코 깊은 내면의 자아에 이를 수 없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을 만나지 못한다. 시인 릴케(R. M. Rilke)는『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의 존재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 전체 사랑의 가치다』라고 했다. 하지만 고독을 두려워하고 피하고자 하는 사람에겐 결코 이런 자아상봉의 기쁨을 맛보지 못한다. 인간의 창조력도 고독한 상태에서 생기는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 글을 쓰려고 흰 원고지를 앞에놓고 있을때 우선 쓰기전에 한권의 책이라도 더 참고 하고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내 자신을 가라앉히느라고 힘써야 한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뒤돌아 볼 때 하루종일 내가 한 일이 무엇이든 모든 것이 고통이나 즐거움이 된다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나의 진정한 자아와 만나는 것을 막아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루의 모든 일이 결국 내 자신 고독감과 마주칠까봐 하는 두려움에서 빚어진 것도 너무나 많다. 하루의 일과는 그런대로 다른 이유로 일을 했다 하더라도 일과를 마친 후에 나 혼자 정말 자유로운 그 순간에도 고독한 자아와 맞부닥치는 것이 어렵다. 이 순간에도 누구에겐가 전화를 걸고 싶거나 전화 오기를 기다리며 잠깐 바깥으로 나갔다 오고싶거나 친구를 방문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않으면 안된다. 왜 자유로운 이 시간을 자유롭게 보내려 하지 않는가?
사람은 자유를 원하면서도 자유가 주는 고독감 때문에 자유를 두려워하는것 같다. 그래서 자유로운 시간을 참으로 자유롭게 보낸다는 것은 고독과 맞부닥칠 수 없는 사람에겐 괴로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독을 없애줄 타인을 찾아나서지만 고독을 못이겨서 자신을 타인에게 내맡긴다는 것은 자아를 더욱 고통스럽게 할뿐이며 지루하고 거북살스런 교우관계나 애정관계를 만들어버린다. 그래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자리나 직업을 구세주 기다리듯 기다리며, 항상 속으면서도『이번에는 내가 알게 모르게 찾던 것을 얻으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타인이 내 고독을 없애주지 못할 때 여기서 갈등이 생기고 싸움이나 불평 비난 타인을 단죄하는 일 등이 생긴다.
더욱이 자신의 고독을 없애고자 타인에게로 향하는 그 욕망이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폭력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고독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엔 파괴적인 요소가 깃들이고 있다. 그 첫째가 사상의 폭력으로서 마음속에 의혹을 일으키고 내적인 험담, 복수심에 불타는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
이러한 폭력은 인간관계에서 자기가 상대로부터 적게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많이 요구하는 악순환에다 자아를 몰아넣게 된다. 그래서 모든 교우관계나 애정관계는 더욱 소원해지고 사람은 다시 고독해진다.
인간은 자기안의 폭력인 고독의 힘을 이겨야하며 그것을 이기는 것은 고독을 피하고자 하거나 타인에게 매달리지 않고 고독과 맞부닥치는 것이다.
<이 글은 NCR지 게재된 헨리 노웬 신부님의 글을 참고하였음을 밝혀드립니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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