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에 일어나시어 집에서 나와 조용한 곳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마르꼬 1장35절)
병고로 고통 당하는 자들은 치료해 주시고 악령에 시달리는 자들은 낫게해 주시고 인내하지 못하는 제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해 주시며 이 고을에서 저 고을로 전도여행을 다니시고「시나고가」에서「시나고가」(회당)에로 다니시며 강론하시는 등 온통 행동으로 점철된 성서의 말씀 가운데서 우리는 위와 같은 조용한 말을 읽을 수 있다.
숨쉴 사이없는 행동속에서 고요한 숨소리를 들을 수 있고, 동적인 시간속에서 아주 절박한 순간을 만날 수 있으며, 휘말려 들어가는 와중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부분이 있고, 모든 것에 관련하는 마음에서 한발짝 뒤로 물러섬이 있고, 행동중에 명상이 있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은후에 혼자 떨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 행하신 직무의 비결은 이른새벽 기도하러 가신 그 외딴 장소에 숨어있는 것 같다. 예수께서 떠들며 행동하신것 같은 성서의 말씀들 중에 숨어있는 이 조용한 문장을 읽을수록 이러한 생각이 더해진다.
그 외딴 장소에서 예수님은 자기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를 용기를 발견했고, 또 당신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당신의 사업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업을 할수 있는 용기를 거기서 얻으셨다.
그래서 그분은 언제나『나는 나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나의 목적은 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요한 5장30절)라고 하셨고 또『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들은 내 자작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을 행하시는 분은 너희 가운데 살아계시는 하느님 아버지시다』(요한 14장10절)라고 하셨던 것이다.
예수께서 하느님 아버지와 친교가 이뤄진 곳은 그 외딴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당신의 직무가 배태되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일상생활 중에 있는 이 외딴 장소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실 외딴곳이 없는 생활이란 위험한 생활이다. 침묵이 없는 곳에서는 말이란 의미를 상실하며 듣는 것이 없으면 말하는 것도 치료하지 못하며 친밀함이 거리를 두지않으면 구제할 수 없듯이 외딴곳이 없는 우리의 행동이란 즉시 공허한 몸짓에 불과해진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도 그때의 장소와 환경에 따라 자신의 취할바 행동을 결정하셨다. 명상하는 가운데 안정과 평온을 찾을 수 있으며 정말로 필요한 때에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침묵과 말, 물러섬과 말려드는 것, 간격과 접근,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균형에 주의하는 것이 신자 생활의 기초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 인격이 주의를 기우려야 할 주제는 바로 이 양자의 균형에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