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추측이 틀림없다면 이 작자는 경찰서장이든가 아니면 장교였다.
나는 간이 콩알만해지면서 아가씨에게로 애원의 눈길을 던졌다. (나를 위해서 이 가엾는 총각을 위해서 한마디만 무마의 말씀을)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빌고 있었다.
그녀는 꼴좋게 됐다는듯 비소를 머금었다. 나는 별수없이 한꾀를 짜냈다.
『아, 아저씨세요. 저는 요며칠 전에 아저씨댁 바로 뒷집에 하숙한 박군입니다. 찾아뵈옵고 좋은 말씀도 좀 듣고 싶었습니다』
작자는 눈이 커지면서 슬며시 등옷자락을 놓는다. 마침 이때 막이 오르고 무대에는 한마리의 곰이 튀어나왔다. 곰탈을 쓰고 나타난 등장인물이었다. 나는 무사히 이 위기를 빠져나갈 수가 있었다. 사람들의 눈이 무대쪽으로 쏠리고 있는 틈에 나는 아깝긴 했지만 자리를 떠버린 것이다. 살그머니 허리를 굽히고 의자사이로 난 좁은 틈바구니로 나는 나와버렸다. 극장안은 넓었으니까 어디에서라도 관람할 수는 있었다.
나는 화장실 쪽으로 갔다. 거기서 무대 주최자 한사람을 만났다. 그는 줄곧 무대 뒷켠에 지켜서서 배경이 바뀔때마다 세트를 뜯고 세우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교무금을 거출하는 교무위원이었으니까.
『마테오씨 아니세요』
그는 단번에 나를 알아본다.
『아, 토마스냐. 너 왜 여기 서있냐 자리에 앉지않고』
그러면서 그는 소변이 마려운듯 했다
『화장실에 가시는 길이세요? 어서 다녀오세요』
그는 빙긋 웃는다. 두 걸음 걸어가다가 뭔가 생각난 모양이다.
『참, 토마스, 무대 뒷켠으로 가있어라 너는 목수니까 잘해낼꺼야』나는 길게 설명 안들어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무대장치를 위해서 내게 협력을 구한 것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역할을 맡은듯 단숨에 무대 뒷켠으로 달려갔다. 거기엔 서너명 지키고 서있었다. 모두가 본당의 유력한 인물들이었다. 이번 학예 발표회를 위해서 신부님은 이들을 동원시켰던 것이다.
『이어 토마스 잘 와줬어』
그 중 한 사람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덥썩잡으며
『마테오씨가 보냈어요 수고 많으시죠』하고 인사했다.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서로가 무대에 상연되고 있는 꼬마들의 재롱을 보려고 눈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나의 눈에는 한참만에 무대 저쪽켠측 휘장 뒤에서 손발을 움직이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그 움직임은 무대에 나가서 무용하고 있는 꼬마의 움직임과 꼭같았다. 꼬마는 무용 도중에 가끔씩 휘장 뒷쪽으로 돌아보곤 했다.
나는 비로소 알아챘다. 휘장뒤의 누군가는 바로 체칠리아였다. 머리만큼은 머리핀으로 찔러서 등뒤로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그녀의 동작에 따라 출렁거렸다. 그녀는 꼬마가 무대에 나가서 순서를 까먹지 않도록 보조역할을 하고 있었는 것이다.
나는 줄곧 그녀를 쳐다보았으며 한가지 묘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즉 인형극이었다. 인형을 유리상자속에 넣고 그 손발에 실을 짜매어 걷게도 하고 뛰게도 하는 인형 조종사 체칠리아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는 프로그램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순서를 리드해나갔다. 나는 그녀의 춤추는 모습에 매혹당하고 있었다.
알맞게 균형잡힌 몸집, 날씬한 키, 세련된 동작, 무엇하나 부족한게 없다. 나는 관객들보다 더 훌륭한 무용을 구경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체칠리아는 꼬마가 잘해내지 못할까봐 안타깝게 손짓하곤 했다.
무대에는 눈사람이 상연되고 있었다. 눈사람 벙거지를 둘러썬 꼬마 눈사람들 꼬마들은 눈만 두개 내어놓고 무대에서 껑충거린다. 저들끼리는 정말 눈사람이 되어버린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용인즉 눈사람 대장이 부하들에게 해뜨는 시간이 가까웠으니 녹지않도록 하느님께 기도하자고 선동하는데 부하들이 이에 응하기를 거부한다. 대장은 이들중 하나를 정렬 가운데서 끌어내어 밀쳐버리는 것이었다. 바닥에 넘어진 부하가, 사실은 그 속에는 꼬마가 그만 울음보를 터뜨렸다. 이 통에 관객들은배꼽을 걸어안고 웃어제꼈다.
나도 웃어제꼈다. 넘어진 눈사람이 일어나려고 애써는 광경은 숨이 끊어지도록 우스웠다. 공처럼 이레데굴 저리데굴 애쓰는 광경.
체칠리아가 참을 수 없이 손바닥으로 입을 누르며 대장에게 일으켜주라는 손짓을 수차례나 했다. 그러나 대장은 이쪽의 손짓을 알리 없었다. 벙거지에 뚫린 눈구멍에 셀러지를 붙였기 때문에 눈바로 앞의 사물밖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넘어진 꼬마는 일어나려고 무진 애를 썬다. 일어난것 같으면 또 휘딱 넘어져 공처럼 대그르르 굴렀다.
관객들이 웃어제끼니까 넘어진 꼬마를 제외하곤 벙거지를 썬 저들까지도 깔깔거린다.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밤새도록 웃어제낄것 같다.
피아노 반주를 하고있던 요한나 수녀님이 사회에게 손짓했다. 막을 내려달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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