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8시57분-원주교구장 지 주교가 2백20여일 간의 옥고를 치르고 풀려나던 이날 2만6천여 명의 원주교구 신자들은 벅찬 감격에 못이겨 할말을 잊었다.
『지금 이순간 우리에게 나타난 이 영광의 날을 그리며 우리는 그동안 우리에게 닥친 온갖 시련을 참고 견디어왔습니다』교구장의 출감소식을 전해들은 신자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원주교구는 물론 한국의 1백만 신자들이 오늘의 이 기쁨을 맞이하기까지는 너무나도 큰 희생과 고통을 치뤄야만 했다.
그동안 신자들은 경향각지에서 1백여 회의 기도회를 갖고 지 주교의 석방과, 또 그가 온갖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슬기와 용기를 주실 것을 빌어왔다. 지 주교의 구속으로 특히 원주교구 신자들이 겪은 아픔은 컸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기하는 사순절 첫날인「재의 수요일」(12일) 아침, 존경하는 목자가 옥에 갇힌지 만 7개월을 넘기던 이날 원주교구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은 옥중의 교구장과 고통을 함께하자는 부교구장의「사순절 메시지」를 들으며 어느 때보다 간절한 소망으로 이 땅에 정의와 평화가 임하기를 기원했다.
조그만 간격도 없이 남다른 존경과 사랑을 주고받던 원주교구의 목자와 양(羊).
목자 지학순 주교는 지난해 7월 6일「내란선동 및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의 죄목으로 구속되어 비상군법회의에서 15년 징역을 언도받고 서울교도소 추운 감방에서 옥고를 치르고 있던 2백25일동안 양들은 목자의 신앙과 인격과 신념 그리고 온교구를 따뜻히 감싸주던 훈훈한 사랑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지난 7개월동안 우리는 주교님이 자유로운 몸이 되도록 한마음으로 기도해왔습니다. 우리 주교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교님께 대한 우리의 기도는 또한 이 땅에 진정한 정의와 평화를 바라는 기도이기도 했습니다』
교구 사목과 행정의 핵(核)인 주교가 없는 교구를 어려운 시기에 이끌어온 상서국장 양대석 신부의 말처럼 원주교구는 어느때보다 일치단결, 훗날 하느님의 정의가 심판할 오늘의 고통을 눈물섞인 인내로 극복하고 있었다. 목자가 눈앞에서 연행되어가는 충격이 당장 분노로 폭발할듯한 지난 여름과 가을동안「분노」를 원색대로 나타내서는 안되는 크리스찬이기에 그것을「충고」와「화해」로 승화시켜 지 주교의 석방을「주장」했고 더불어 갇힌 이들의 석방과 정의평화 인권회복을 기원했었다.
그간 교구 주최로 32회에 걸쳐「지 주교와 인권회복을 위한 기도회」를 가졌고 본당은 본당대로 미사중에, 신자들은 둘만 모여도 주교님의 건강과 그의 뜻이 이 땅에 구현되기를기 도했다. 신부들은 전국도시에서 열리는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장성ㆍ함백ㆍ북평 등지에서 3등열차에 올라 새우잠을 청했다.
외국인 선교사들은「주교님이 석방될때까지」이발 면도 안하기의 색다른 결의를 했다.
『주교님의 옥고를 기억하기 위해 이런 고통을 택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신부님 머리가「비틀즈」같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긴 머리를 볼때마다 주교님의 고통을 함께 기억하자고 말했습니다』
식사때 이렇게 말하는 계 올리버 신부(교구 특수사목 담당)의「도우넛」형 수염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신경을 써야할 만큼 수북했다.
교구 사목회 임원인 어느 공무원 신자는 기도회에 강론을 했다가 얼마후「모처」로부터『근신하라』는 충고를 들었지만『양심에 따라 했을 뿐』이라고 태연했다.
그러나 원주시내 원동본당 주임 이영섭 신부를 찾아온 10여 명의 고급공무원 신자들은 마음놓고 성당에 올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와 하며『마음만은 언제나 주교님과 함께 있다』고 괴로와했다. 『당신의 처지를 잘 이해한다고 그들을 위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앙에「임시휴가」가 성립될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경우 무턱대로 용기없다고 비난할 수 없었습니다』이 신부의 말이다.
지 주교가 옥문(獄門)앞에서 기도하는 장면의 합성사진을 만든 원주시내에서「샛별사진관」을 경영하는 교구 청년회장 최모씨는 가족이 모두 가 있는 미국행 이민신청을 낸지 1년이 넘도록 여권이 나오지 않고있다.
교구 사무처에 근무하는 이우근(36)씨는 작년 7월 이후 기도회가 열기를 더해가는 것과 반비례하여 참가자가 줄어들었던 이유를 애써 다른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이 현상은 시간이 가면서 일부의 주장이라고 생각했던 지 주교와 원주교구의 주장이 가톨릭의 주장으로 서서히 부각되자 젊은층에서『보수적이고 전례 위주의 종교인줄만을 알았던 가톨릭에 그런 의지가 있는데 놀랬다』는 반응이 점점 커졌고 이것은 전교면에서도 바람직한 현상이었지만 그들에게 시기적으로 부담을 주지 않기위해 전교활동을 일체 중지해왔다.
「미사참례 1, 651회 묵주의기도 14, 207회 희생 2, 752회 성체조배 1132회 주교님을 위해 바칩니다. 21개 쁘레시디움 단원 일동」
교구 사무실에 걸린 레지오 단원들의 이 희생은 모든 교구 신자의 목자를 위한 마음을 대변하는 것인지 모른다.『사순절동안 ①매주 금요일 단식 ②본당 합동「십자가의 길」기도 ③가난한 사람을 위한 모금을 권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희생을 수반한 기도를 들어주시어 목자와 양을 대면케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주교님을 위해 기도해주신 전국의 성직자 수도자 신자 여러분께 감사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양대석 신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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